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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추계강좌 (2018, 10, 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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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11-08 00:00 조회2,13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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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0월 30일 화요일, 날씨가 매우 좋았던 가을날,  이화삼성 교육문화관 806호에서 <문명을 담은 팔레트>의 저자 남궁산 판화가님을 모시고  ‘색으로 만나는 역사와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추계강좌를 진행했다. 

  역사적으로 색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 색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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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은님의 댓글

김경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류와 함께한 색 이야기
                                                                                                                              남궁산

생명의 땅에서 빨강을 캐다
문명을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더욱 선명한 빨강을 땅에서 얻게 됩니다. 수은 광맥에서 빨간 돌덩어리를 캐냈거든요. 이 돌을 한자 로 ‘주사(朱砂)’ 또는 ‘진사(辰砂)’라고 부릅니다. 주사로 만드는 색은 빨강과 주황이 약간 섞인 주홍색과 비슷한데요, 중국과 우리나라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주사에서 얻은 빨강을 부적을 그리거나 도장을 찍는 데 사용했습니다.
주사로 만든 빨간색은 중세 유럽의 기독교 미술에서 가장 신성한 대상에만 쓰였습니다. 빨강은 예수가 흘린 ‘수난의 피’와 같았기 때문에 예수의 희생과 사제의 권위를 뜻했지요. 주사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연금술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지녔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수은과 황이 세상 만물의 근원이며, 그것들을 정제하면 다른 물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금술사들은 수은과 황으로 금을 만들려고 했지만 금 대신 빨강을 손에 넣었습니다. 수은과 황은 주사의 주요 성분이거든요.
광물뿐 아니라 동식물에서도 빨간색을 얻었습니다. 직물을 염색 하는 데 쓰는 빨간 염료는 케르메스 일리키스라는 벌레가 재료였고, 염료의 이름도 벌레에서 따와 ‘케르메스’였지요. 고대 이집트부터 쓰이던 케르메스는 로마를 거쳐 유럽에 전해졌습니다. 다만 매우 값비싸서 아무나 쓸 수는 없었지요. 직물을 10킬로그램 염색하려면 벌레가 14만 마리나 필요했거든요. 고급품이었기 때문에 중세의 농민들은 영주에게 이 벌레를 소작료로 지불하기도 했답니다.
빨간색 염료의 재료가 되는 대표적인 식물은 ‘꼭두서니’입니다. 중국과 우리나라 등지에서 자라는 꼭두서니는 노란 꽃이 피는 덩굴로 뿌리에서 빨간 염료를 뽑아낼 수 있습니다.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 파란색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파란색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파란색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었거든요. 파랑은 초록과 비슷한 색으로 여겨졌지요. 고대 그리스인은 하늘을 그릴 때도 파란색이 아니라 하얀색이나 황금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한술 더 떠서 파랑을 미개인의 색으로 취급하며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로마와 자주 충돌하던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이 전쟁터에서 온몸에 파란색을 칠했기 때문이지요. 파란색의 지위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중세 교회 덕분이었습니다. 파랑은 중세 교회의 스 테인드글라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색이었습니다. 신성한 천상의 세계나 성모 마리아의 옷이 주로 파란색으로 묘사되었거든요. 당시 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열렬히 숭배했기 때문에 파랑의 지위도 덩달아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비로소 파랑이 독립된 색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지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자아내는 신비로운 분위기는 중세 고딕교회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파란색 유리는 오묘하며 깊은 빛을 만들어 내서 ‘파란 성모’(Blue Virgin)라는 별명이 붙은 곳도 있습니다.
교회를 시작으로 파랑은 중세 시대의 왕과 귀족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파란색을 숭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후 수 십 년 동안 파란색은 각종 문학 작품에 등장하며 낭만적이면서도 우수에 가득찬 색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고흐가 보았던 세상은 노란색?
고흐는 왜 그리도 노란색에 집착했을까요? 앞서 말했듯 넉넉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태양을 동경하며 희망과 구원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흔히 고흐는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감정을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조금 흥미로운 의견도 있습니다. 고흐가 자신의 감정을 강렬한 노랑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렸을 뿐이라는 주장입니다.
고흐는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압생트라는 독주를 많이 마셨지요. 그런데 압생트에 포함되어 있는 테레빈이라는 물질은 시각 신경을 손상시켜 사물이 노랗게 보이는 질환인 황시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압생트에 중독된 고흐가 노란색 환각을 작품으로 그려 낸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때때로 튜브에서 짜낸 물감을 먹기도 했던 습관 역시 고흐의 정신과 몸을 망가뜨렸을 겁니다. 고흐가 살던 시기에는 이미 노란색 안료가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판매되었습니다. 하지만 납 같은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지요. 고흐의 작품을 보면 납 중독으로 의심되는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흐에게 노란색이란 아름다운 작품의 밑거름이 되어 준 동시에 고흐 자신을 비극으로 밀어 넣은 주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고흐의 그림이 여태까지와 조금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네요.

초록색이 품은 치명적인 독
고흐가 즐겨 썼다던 노랑과 마찬가지로 초록도 아름다운 색 속에 독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1775년, 스웨덴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는 비소와 구리로 실험을 하다 초록색 안료를 합성합니다. 발명자의 이름을 따 ‘셸레 그린’이라고 불렀고, 1778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회화 안료뿐 아니라 벽지나 드레스 등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쓰였지요.
하지만 셸레 그린으로 그린 그림과 벽지가 습기와 만나면 비소 가스가 피어났습니다. 19세기 중반에는 유럽에서 아이들이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는데요, 조사 결과 벽지의 셸레 그린에서 피어난 비소 가스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셸레 그린의 위험성에 주목했지요.
나폴레옹 역시 셸레 그린의 희생자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때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자, 오랫동안 그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온갖 추측이 나돌았습니다. 1960년대에는 나폴레옹이 남긴 머리카락을 분석 한 결과 비소가 정상치를 훨씬 웃돌게 검출되어 화제가 되었지요. 이 때문에 누군가 나폴레옹을 독살했다는 설이 대두되었지만 다르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셸레 그린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가구와 벽지 등에서 비소 가스가 흘러 나와 나폴레옹의 건강을 해쳤다는 것이지요. 아직 명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나폴레옹의 사인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가설로 꼽힙니다. 이토록 위험한 색이건만 셸레 그린은 20세기 초에서야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검은색은 불길하다?
중세 유럽에서 흑염소, 검은 고양이, 까마귀 등은 사람들에게 미움받는 동물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악마는 흑염소의 머리에 검은 박쥐의 날개를 지닌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지요. 또한 검은 고양이는 마녀가 기르는 동물이라는 인식 탓에 무차별로 죽임을 당했고요. 유럽에서 페스트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던 이유 중에 하나로 당시에 벌어진 고양이 학살이 꼽히기도 합니다. 고양이가 적어진 탓에 병을 옮기는 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지요. 페스트를 흑사병(黑死病)이라고도 하지요? 그 명칭 역시 유럽에서 페스트를 ‘검은 죽음’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것입니다.
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1929년 미국에서 주식이 대폭락한 날을 가리키는 ‘검은 목요일’, 상대방을 협박하는 내용을 담은 ‘블랙 메일’, 근거 없이 상대방을 모략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흑색선전’, 비밀리에 감시해야 하는 사람들을 정리한 ‘블랙리스트’ 등 검은색이 포함된 부정적인 단어는 아주 많지요.
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유럽 문화에서 두드러집니다. 오히려 고대 이집트에서 검은색은 비옥한 토지와 비슷한 색이라 풍요를 상징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등에서는 오로지 검은색 먹으로만 그리는 수묵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았지요. 그러니 검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 지역, 문화에 따라 달랐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검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다루는 것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검은색을 꺼리는 데서 나아가 검은색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가치를 부여하면 자칫 비극이 벌어질 수 도 있거든요. 대표적인 예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흑인 차별이지요. 나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대도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하얀색을 동경한 신고전주의
8세기에는 르네상스 시대이후 또다시 고대 그리스를 열렬히 동경하는 예술 운동이 일어납니다. 바로 ‘신고전주의’입니다. 건축을 비롯해 조각, 회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친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를 모범으로 삼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예술을 바탕으로 완벽한 조화, 명확한 표현, 엄격한 균형 등을 추구했지요.
신고전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18세기 독일의 미술사학자인 빙켈만이 꼽힙니다. 그는 ‘근대의 그리스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습니다. 빙켈만이 고대 그리스 미술을 “고귀한 단순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라고 평가한 것은 지금도 종종 인용될 정도이지요. 고대 그리스 문화에 반한 빙켈만은 순수한 하얀색이 가장 아름다운 색이며 사람의 몸도 하얄수록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빙켈만을 존경했던 괴테 역시 자신이 쓴 『색채론』에서 “교양 있는 사람은 색에 거부감을 느낀다.”라며 하얀색을 높게 평가했고요.
하지만 이후 그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전과 조각이 갖가지 색으로 채색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세월이 흐르며 채색이 닳아 없어졌을 뿐입니다. 이처럼 빙켈만의 사상에는 한계점도 많습니다. 직접 그리스에 가 보지도 못했고, 그나마 접한 유물은 특정 시대에 쏠리거나 후대에 로마에서 만들어 진 모조품이었지요. 어찌 보면 진짜 고대 그리스를 모른 채 자신들의 잣대로 해석하고는 이상향으로 삼은 셈입니다. 또한 피부가 하얄수록 아름답다는 말은 백인 우월주의가 드러난 발언으로서 비판 받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한계가 있다고 신고전주의를 전부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추구한 이상향에는 분명 우리가  다시 생학해 볼 만한 의미가 있거든요.

보라는 바다에서 캐내는 보석
오랫동안 보라는 최상위층의 권위와 권력을 상징했지요. 복잡한 이유가 숨어 있지는 않습니다. 만들기 까다롭고 귀해서 보라가 당시 가장 값비싼 색이었거든요. 보라가 오늘날의 다이아몬드처럼 사치품이었던 셈입니다. 대체 보라를 어떻게 만들었기에 그렇게 귀했을까요?
기원전 1600년경 오늘날의 시리아 지방에 살던 페니키아인은 지중해에 서식하는 ‘무렉스’와 ‘푸르푸라’ 등 여러 종의 고둥에서 보라색 염료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보라를 ‘고둥의 피’라고도 불렀지요. 고둥이 분비하는 무색의 점액을 오랫동안 달이면 노란색을 띠는 염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노란색 염료로 직물을 염색한 뒤 햇빛에 말리는데, 처음에는 초록으로 그다음에는 빨강으로 변했다가 마지막에는 보라가 되었지요. 이렇게 얻은 보라색 직물은 이미 충분히 햇빛을 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색이 바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색들이 변색되던 시대에 변치 않는 색이라니, 옛사람들에게 보라는 특별해 보였을 겁니다. 게다가 보라색 염료는 많이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고둥 한 마리에서 얻는 점액이라고 해 봤자 몇 방울 안 되거든요. 손수건 한 장 염색하는데 염료가 1그램 정도 드는데, 20세기에 고대의 방법을 재현해 보니 보라색 염료를 1그램 만들려면 고둥이 약 1만 마리나 필요했다고 하지요. 이러니 보라는 어마어마하게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어로 보라를 뜻하는 ‘퍼플 (purple)’도 고둥과 관련이 있습니다. 퍼플의 어원인 라틴어 ‘푸르푸라(purpura)’는 보라와 더불어 고둥을 뜻하기도 하거든요. 더 나아가 아예 푸르푸라가 보라색 옷을 독점한 왕족이나 고관을 가리키기도 하지요. 이것은 퍼플도 마찬가지라 ‘더 퍼플(the purple)’이라고 쓰면 황제를 뜻합니다. 저는 고둥과 보라색과 황제를 가리키는 단어가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여태 음식 재료라고 생각했던 고둥을 다시 보게 되더군요.

종교와 주황은 뗄 수 없는 관계
인도에서도 주황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주황색과 인도 사람들을 연결하는 종교는 불교가 아닌 힌두교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인도 사람 중 불교도는 1퍼센트도 안 됩니다. 약 80퍼센트가 힌두교도이지요. 힌두교에서 주황색은 희생, 금욕, 구원 등을 상징하며 가장 성스러운 색으로 손꼽힙니다. 그래서 힌두교 사제와 인도의 왕족, 귀족은 주황색으로 물들인 옷을 입었지요. 그들이 쓴 주황색 염료는 붓꽃의 일종인 사프란에서 얻은 것입니다. 사프란은 염료는 물론 향신료나 약으로도 쓰이는데요, 다만 식물에서 얻는 염료들이 대개 그렇듯 사프란으로 만든 염료도 매우 값비쌉니다. 염료를 30그램 정도 만드는 데 사프란 꽃이 4,000송이 넘게 필요했으니 비싼 것도 당연하지요. 사프란은 지금도 가장 귀한 향신료이자 천연염료 중 하나로 꼽힙니다.
재미있는 점은 인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황색의 범위가 우리보다 훨씬 넓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도의 노랑’이라고 부르는 ‘몽기르 피우라’ 역시 인도에서는 주황색의 일종이라고 여깁니다. 투명도가 높아서 주로 수채화 물감으로 쓰이던 몽기르 피우라는 지린내 같은 악취로도 유명한데요, 실제로 암소의 오줌이 원료입니다. 오줌이 떨어진 흙을 둥글게 굴려서 만들었지요. 끔찍한 사실은 병든 소의 오줌일수록 진한 색이 만들어지기에 일부러 소가 병에 걸리게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물을 거의 주지 않고 망고 잎만 먹였다고도 하지요. 결국 몽기르 피우라 제조는 20세기 초에 동물 학대를 이유로 금지되었습니다.
빨강, 파랑, 보라를 거쳐 주황까지 보니 종교와 색은 정말 뗄 수 없는 관계인 듯합니다. 귀한 색은 종교에 권위를 세워 주고, 종교는 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요. 앞으로 종교 시설을 방문하게 되면 어떤 색이 쓰였는지 유심히 보세요. 그 색이 여러분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도 모릅니다.

여자아이들은 언제부터 분홍색을 입었을까?
여자아이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는 관습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부유한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은 아이에게 하얀색 옷을 입혔거든요. 19세기 말에 저렴하고 세탁도 잘 견디는 합성염료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아이들에게 색이 들어간 옷을 입혔지요. 게다가 20세기 초까지는 외려 분홍이 남자아이의 색이었습니다. 1918년 미국에서 발행된 어린이 패션 잡지를 보면 “분홍은 단호하고 강한 색이기에 남자아이에게 어울리지만, 파랑은 섬세하고 고상하기에 여자아이에게 어울린다.”라는 내용이 있지요. 왜 이렇게 분홍에 대한 인식이 달랐을까요? 분홍이 빨강의 친척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유가 납득이 됩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유럽에서 빨강은 오랫동안 권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쉽게 말해 남자의 색이었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군인들은 빨간색 군복을 입기도 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빨강에 가까운 분홍이 남자아이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색에 대한 인식만 바뀐 것도 아닙니다. 19세기 부유한 집안의 남자아이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리본 달린 구두를 신었거든요. 당시 남자아이의 그림을 보여 주고 성별을 맞춰 보라고 하면 우리는 십중팔구 여자아이라고 답할 겁니다.
20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에서 서서히 여자아이에게 분홍 옷을 입혔다고 하는데요, 오늘날에는 색과 성별을 연관 짓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려야 남녀 차별이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몇 년 뒤에는 분홍이 남 자를 대표하는 색이 될지도 모릅니다. 여태 다룬 모든 색들이 그랬듯, 색의 의미란 사회 분위기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니까요. 여러분도 ‘분홍은 여자의 색’이라고 단정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색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리면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야도 훨씬 넓어질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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