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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 영학회 추계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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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10-27 22:29 조회5,2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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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6일 (화) 10:30-2pm 삼성교육관 806호에서 이배용 전 총장님이 <한일 병합 100주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란 연제로 추계강좌가 이루어졌다.
다음은 강좌 요약내용.
<한국의 국가 Brand는 기업으로 하면 한국이 5위안에 들지만, 국가적으로는 30위정도다. 국격을 올리려는 '주인의식'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아름다운 전통과 가치속와 빠른 속도감속에서 균형을 이루어야하며 현재나 미래가 분명치 않을때는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1년의 소중함을 재수생에게 물어보라. 한달은 조산한 산모에게, 일주일은 주간지 편집장에게, 1시간은 애타게 연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루는 여섯식구를 책임지고있는 일용직 근로자에게, 일분은 방금 비행기를 놓친 사람에게, 1/100초는 올림픽은메달리스트에게 물어보라. 고린도전서 3장 1절에도 "천하만사에 모두 때가 있다"고 나와있다.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살해한 의미있는 날이다. 그리고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우리는 알아야할것, 놓치지 말아야 할것을 다져서, 스스로 문화, 역사 의식을 가지고 우리나라를 지켜가야 한다. 8000여개의 발음을 표기할수있는 한글을 보라. 약자에 대한 배려와 백성과 소통, 화합하려는 세종대왕의 마음의 진정성이 보이지않는가?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과 민족혼이 있는데 우리는 왜 100년전 무너졌는가?  다시한번 되새겨야 우리는 다시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것이다.
근대사 자료를 중심으로 논의 하겠다.
1866 <병인박해> 천주교 대 박해 사건이 일어나 8000명 신도가 처형당했고, 특히 9명의 프랑스 신부가운데 6명이 처형되며 프랑스가 사과를 요구하며 일어난 사건이 <병인양요>다.  이들은 통상을 요구했으나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이들은 외규장각 설 (340종)을 가져가는것으로 물러갔고, 1871년 미국이 통상을 요구했지만 배를 태워버림으로 인해 미국은 사과를 요구한후 당시 남북 전쟁을 수습해야하는 정황으로 인해 돌아갔다.
이에 한국은 이 두 나라와의 분쟁에서 이긴 것으로 간주하며 준비없는 미래를 맞이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을 단행하며, 내부의 불만을 대륙정복이라는 것으로 풀어내려고 하는도중, 1873년 대원군의 하야가 이루어지자, 치밀하게 계획하여 1875년 운양호 사건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초지진앞에 의도적으로 정박한후 각본에 의해 한국에 트집을 잡고, 분쟁을 일으켜 36명을 즉사시키며 부상병을 속출하게 한 사건이다.
1876년 강화도에 닿을 내리고 통상 협상을 요구하여
1876년 강화도 조약 총 12개 조약을 이루어 내고,
1884년 갑신정변: 이상은 좋았지만, 현실감이 부족하여 대표 4인이 일본에 기대려고 함
1882년 5월 22일 한미 수호 조약 14조를 통해 일본은 실리를 찾았고,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을 통해 일본의 정복의도를 간파하고 있던 반대세력을 제거
1896년 2월 11일 명성왕후의 돌아가심으로 인해 충격에 빠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긴 아관파천,
1897년 2월 고종은 덕수궁으로 돌아와 나라를 쇄신하고자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하였으나, 일본은 그것을 묵살하고자 1913년 그곳을 헐고 철도 호텔을 세우고, 그곳은 1945년 해방 후 반도호텔, 1968년 조선호텔로 바뀐다. 이곳은 역사적인 원구단이 있던 곳으로 복원 되어야 하는데 아쉽다.
1902년 영일 동맹을 맺고,
1905년 미국, 영국, 러시아를 끌어들여 을사조약 (통감 이등박문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며 이때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여 법을 모두 일본에 유리하게 바꿈)
1907년 정미구조약: 만국회의에 우리 대표단을 보냈던 고종을 폐위시키고 사법권을 박탈하며 차관정치를 시작( 실무에 일본인을 배치하여 의병운동을 억압)
대한민국은 그때 여럿이 사립학교를 개교 (예: 오산학교) 하는등 교육에 힘을 썼으나,
1910년 8월 22일 한일 병합은 이루어지고
준비없이 과정없이 맞았던 미래 35년간을 일제의 치하에서 살아야만 했다. 1919년 삼일 운동으로 외신에 우리의 저항 의지를 알리긴 했지만, 우리는 후손들을 위하여 역사의 길, 미래의 길을 단단히 매김질해서, 바르게 사는 나라를 위해 나눔, 섬기는 존중이 있어야 겠고, 소통속에서 인류의 평화를 이루어내게 다같이 힘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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