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유중근(’67) 동창이 신임 영학회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 독실한 Christian으로써 봉사활동을 강조,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1997년 말의 初有의 국가 부도 사태로 인해 많은 실직자가 나오고 빈곤가정이 생기면서 재정봉사의 일환으로 결식학생 돕기를 시작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이화여대 부속 고등학교가 강북의 광역학군에 속해 서울의 변두리 지역의 학생들이 지원해 50%의 학생이 빈곤가정 출신이라는 사실에 접해, 영학회 동창들의 도움을 구하자 많은 선후배들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1998년 6월부터 기금을 모으기 시작해 9월부터 21명의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일인당 평균 50,000원 정도로 방법은 이화여대 식당 식권을 사서 배부해 주는 식이었습니다.
1999년에 각급 학교에 구내식당이 설치되어 교내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급식비는 일인당 40,000원 정도로 이대부중 10명, 이대 부고 20명, 금란고교 10명으로 지급이 확대 되었습니다.
2000년도에는 이대부중 10명, 이대부고 20명, 금란고교 15명으로 더욱 확대되어 한달 급식비로 2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기금이 점점 부족하게 되었으나, 춘계 강좌 겸 총회에서 성금 증액을 호소하자 선후배 동창들이 각기 동창모임의 회비에서 매달 일정하게 지원해 주는 등 동참해 주셨습니다. 가을 학기에는 이대부중이 제외되고 이대부고와 금란고교 35명에게 급식비를 지원하였습니다. 2000년도부터 도움 받는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IMF 충격에서는 벗어 난 듯 했으나, 빈곤에 의한 가정파괴로 인해 결손가정 출신이 많아졌고, 급격한 빈곤이 아니라 만성적인 빈곤 상태로의 이입이 눈에 띄었습니다.
2001년에는 이대부고와 금란고교가 합쳐져 이대부속 이화금란고가 되어 30~32명 정도를 도와 줄 수 있었습니다.
2002년도에도 이대부속 이화금란고 학생 23명에게 급식비를 계속 지원했으며,.
이에 2003년 1월 7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거행된 이대부속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우리 영학회에 감사패가 증정되었습니다.
2003년의 계획으로는 중단됐던 이대부중 학생들에 대한 급식지원을 재개하려고 합니다.
동창 여러분의 그간의 협조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리며, 지속적인 동참 부탁드립니다.
이화 동창지 영문과소식 - 이번 여름에 출범한 33대 영학회에서는 내년 영문과 백주년기념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학회 동문 간담회를 주최하였다. 건강한 줄기세포 하나가 여러 기능을 하는 우수한 장기로 분화발전되듯 이화영문라는 줄기세포는 우리 나라의 중요 혈맥으로 곳곳에 뻗어나아왔다. 식민지와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통을 겪어내며 오늘 날 K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이화영문의 역사가 동창 간담회에서 다시 보기로 재생되는 감동이 무더위를 제압하며 올라왔다. 다음은 성사된 간담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