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어머니날 북악산이 커다랗게 보이는 운동장에서 교회 운동회의 릴레이 달리기에서 뛰다가 넘어져 오른쪽 팔꿈치와 왼손바닥을 다쳤다. 미리 나가 바톤을 받아 뛰고 바톤을 다음 타자에게 주기까지 몸보다 마음이 앞서가고 코너를 도는데 전속력을 내어 뛴 것도 문제였지만, 바닥이 왕모래가 좍 깔려있어 보통 운동화로는 미끄러지게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넘어져 다친 것 보다는 모든 사람이 쳐다보는데서 미끄러진 것도 부끄럽고 우리 팀이 나 때문에 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앞서 피가 나고 쓰라려도 대강대강하고 왔는데, 이 주가 넘어도 오른팔이 욱신거리고 흉터가 남을 것 같아 그날 용감히 자원해 나간 게 후회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려서도 많이 넘어졌다, 무릎에 자주 딱지가 내렸고 다리뼈를 계단에 부딪쳤던 아픔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아프다. 다리 한 부분은 피가 나서 어린마음에 옆에 있던 신문지를 얼른 찢어 붙인 게 흐릿한 문신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이 상했거나 마음이 상했던 것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아픈 파편들을 떠올리면 다 잊었는줄 알았는데도 어딘가 먼 과거에서 보이지도 않는 감정과 느낌이 올라와 뜨겁고 뭉클한 것이 가슴을 스친다. 눈에 보이는 그 옛 상처나 문신은 이제 하나도 아프지 않고 느낌조차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들은 지금도 가끔 아파온다. 가족이나 인간관계에서 받은 오해나 핀잔, 상처는 어째서 아직도 가슴 속에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것일까.
나는 그날도 바로 얼마 전 끝없이 춥던 날 기나긴 이 겨울만 끝나도, 날씨만 따뜻해져도 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버거운 세상살이와 아직도 마음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조국의 삶, 그리고 반복되는 마음의 상처로 계절의 여왕 5월에 나는 가슴을 앓고 있었다.
미국서 낳은 아들아이도 개구쟁이일 때는 무릎이며 다리 발 손가락까지 걸핏하면 다치고 피가 나고 딱지가 앉았다. 아이의 보드라운 살에 상처가 나는 걸 보는 것은 엄마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엄마가 된 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걱정은 이것저것 따라 다니지만 그 중에서도 몸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으뜸일 테니까.
그러나 아이의 마음이 상하는 것을 보아내는 것은 더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한창 말 배우는 나이 세살에 서울서 몇 달 우리 말을 배워 왔는데, 미국에 다시 와서 유아원에서 교실 안 토끼장 속의 토끼를 보고 토끼, 토끼 부르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자기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걸 깨달은 아이는 딴 나라 말을 쓰는 학교는 안가겠다고 아침마다 악을 쓰고 울었고 그런 아이를 하루 종일 벌세우듯, 일하는 나는 매일 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다시 일하는 엄마를 따라 6학년에 서울에 와서 학교를 가게 됬을 때, 텃세 부리는 아이들을 피해 며칠을 하루 종일 사직공원에서 놀다 온 것을 나중에 알게 됐을 때, 그리고 서울에서 가족을 기대같이 잘 못보고 참으로 외로왔을 때, 한국에 데려온 걸 늘 죄스러워 하다 다시 고등학교를 미국 기숙사 학교로 보내게 되었는데 여기에 내린 뿌리를 다시 옮기는 외롭고 힘겨운 과정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런 자잘한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컥해 진다. 몸을 다치는 것만이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 사직공원에서 해질 무렵 돌아온 아이는 “그 애들은 내가 싫은 거야” 했었지. 그땐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들었을테고 그래서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날 운동회가 끝나고 나오는데 탄자니아에서 킬리만자로 산을 안내하는 마라톤 선수 알프레드가 내 팔꿈치와 손바닥의 피를 보더니 “Sunshine, 아프리카에서는 몸이 다치면 몸이 더 강해진다고 하고 스포츠 선수는 넘어지고 다칠수록 더 스타가 된다”고 위로해 준다.
그렇구나.
내 영혼의 상처와 마음의 넘어짐도 내 마음과 영혼을 더 단단히 더 강하게 만들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이화 동창지 영문과소식 - 이번 여름에 출범한 33대 영학회에서는 내년 영문과 백주년기념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학회 동문 간담회를 주최하였다. 건강한 줄기세포 하나가 여러 기능을 하는 우수한 장기로 분화발전되듯 이화영문라는 줄기세포는 우리 나라의 중요 혈맥으로 곳곳에 뻗어나아왔다. 식민지와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통을 겪어내며 오늘 날 K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이화영문의 역사가 동창 간담회에서 다시 보기로 재생되는 감동이 무더위를 제압하며 올라왔다. 다음은 성사된 간담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