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출세 비결? 당당함이죠"
세계 한민족 여성네트워크 참가 전신애 미국 노동부 차관보
“호주제가 폐지된 덕을 제가 가장 크게 봤지요. 동성동본 남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한국 호적에 처녀로 돼 있거든요.(웃음) 이제 모국을 앞문으로 드나들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모두 용기 있는 한국 여성들 덕분입니다.”
진홍색 재킷을 입은 전신애(62) 미국 노동부 여성국 차관보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머금었다. 2001년 한국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중앙정부 고위직에 진출했던 그는 5~8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리는 ‘2005 세계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했다.
그는 6일 개막식 기조강연에서도 유머와 재치있는 화술로 200여 청중을 감동시켰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미국 공직사회에 진출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명쾌했다. “내가 맡은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 그리고 베스트 아이디어를 내는 거죠. 미국 공무원들도 종종 성공비결을 물어오는데, 솔직히 그들에겐 마음에 없는 소리도 가끔 해요. ‘좋은 시기에 좋은 상관을 만나 좋은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노라고.’(웃음) 그러나 똑똑한 여성들이라면, 얼마나 제가 철저하게 일했으면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알 겁니다.”
물론 그 자신감은 하루아침에 얻은 게 아니다. 일리노이주 아시아계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공직에 입문해 일리노이주 노동부 장관을 거쳐 미국 노동부 여성국 차관보로 올라선 20여년에 걸쳐 몸에 밴 노하우다.
“소수민족 여성으로서 미국 주류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느냐고요? 당연히 무시당했죠. 이를 극복하려면 재능만 갖고는 안 됩니다. 나는 늘 보디 랭귀지로도 당당함을 보이려 애썼어요. 아시아계 후배 여성들에게 나는 ‘처음 보는 미국인들, 특히 남자들에게 인사할 때 절대 상체를 굽히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여성들을 겸손하다기보다는 열등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전씨는 동성동본 결혼을 단호히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1965년 남자를 따라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오직 ‘사랑’ 하나 믿고 달려간 겁 많았던 여자가 정계로 입문한 건 공학자인 남편 전경철(60·아르곤 연구소 연구원)씨 덕분이다. “남편은 미국서 살려면 일을 가져야 한다면서 노스웨스턴대학으로 등을 떠밀었어요. 우연히 주 정부 선거와 관련해 한 후보의 일을 돕다가 공직 진출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남편이 적극 권유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집안일만 했던 전씨는, 주부들에게 “파트타임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아이들이 걱정이라고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교육적인 것은 열심히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이화 동창지 영문과소식 - 이번 여름에 출범한 33대 영학회에서는 내년 영문과 백주년기념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학회 동문 간담회를 주최하였다. 건강한 줄기세포 하나가 여러 기능을 하는 우수한 장기로 분화발전되듯 이화영문라는 줄기세포는 우리 나라의 중요 혈맥으로 곳곳에 뻗어나아왔다. 식민지와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통을 겪어내며 오늘 날 K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이화영문의 역사가 동창 간담회에서 다시 보기로 재생되는 감동이 무더위를 제압하며 올라왔다. 다음은 성사된 간담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