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동문(69)이 9월 20일(수)부터 26일(화)까지 중구 소재 명동성당 지하1층에서 ‘북촌 韓屋’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정희선 동문은 정세권 선생의 손녀로 ‘북촌 韓屋’ 사진전을 통해 북촌 한옥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재조명하고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북촌에 열광하고 있지만, 정작 누가 이런 동네를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비단 북촌뿐만 아니라 인근의 인사동, 혜화동, 성북동의 작은 한옥들, 그리고 서서히 빛을 내고 있는 종로 3가 뒤편의 익선동, 종묘 옆 봉익동 등 200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 아담한 동네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20세기 초 한 명의 선각자 기농 정세권과 그가 설립한 회사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기농 정세권은 경성 전역에 작은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인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했다. 조선인을 위한 주택을 조선인 회사가 건설해 조선인들이 살게 한 것이다. 1920년대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면서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할 때, 그의 대규모 한옥집단지구 개발은 조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는 주택 부문의 물산장려운동이었고, 이를 통해 조선인의 북촌이 건재할 수 있었다.
그는 성공한 부동산 디벨로퍼이자 대자본가에 그치지 않았다.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를 후원하고 조선물산장려회의 실질적 성공을 이끌었다. 본인의 건물에 조선물산장려회 사무실과 전시관을 개설해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황금기를 열었고, 이후 조선어학회에도 회관과 토지를 기증하며 조선어사전 발간에 깊숙이 개입했다. 일제는 그의 민족주의 운동을 빌미 삼아 고문을 가하고 재산을 강탈했다. 그리고 그의 부는 시간과 함께 소멸되었고, 그에 대한 기억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김경민 저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에필로그에서 발췌)
정희선 선배님의 작품전을 보고 온 얼마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땅의 역사 라는 program,에서 정희선 선배님이 나왔답니다. 선배님의 조부이신 정세권선생님의
업적을 그려주었는데, 아주 뿌듯하였습니다.
정희선 선배님은 이 작품전을 해외에서도 하시게 되었다는 말씀도 전해주었습니다.
이화 동창지 영문과소식 - 이번 여름에 출범한 33대 영학회에서는 내년 영문과 백주년기념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영학회 동문 간담회를 주최하였다. 건강한 줄기세포 하나가 여러 기능을 하는 우수한 장기로 분화발전되듯 이화영문라는 줄기세포는 우리 나라의 중요 혈맥으로 곳곳에 뻗어나아왔다. 식민지와 전쟁과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통을 겪어내며 오늘 날 K 한류를 만들어 내는 이화영문의 역사가 동창 간담회에서 다시 보기로 재생되는 감동이 무더위를 제압하며 올라왔다. 다음은 성사된 간담회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