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예 (83)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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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학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3-05-04 11:28 조회4,492회 댓글0건본문
‘뱀장어 스튜’로 제26회 이상문학상 받은 권지혜 동문
올 이상문학상은 한국 문단에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던 늦깍이 신인에게 돌아갔다. 피카소가 마지막 연인에게 바쳤다는 동명의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낯설고도 매혹적인 작품 ‘뱀장어 스튜’로 한국 최고의 문학상을 거머쥔 권지혜 동창(83)이 그 주인공.
프랑스 유학생활 8년 후 재작년에야 귀국, 서른아홉에 등단한 신예이지만 1차 투표에서 심사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그의 작품을 밀었을 만큼 ‘뱀장어 스튜’는 평단으로부터 압도적인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사랑 이야기와 존재 이야기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진행시키는 뛰어난 표현 기법’ ‘요리와 섹스를 접목시켜 인간관계의 근원을 되짚은 것’ ‘한 여인의 사랑과 상처, 갈등을 신선한 상징과 비유로 격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등이 그의 작품에 쏟아진 호평들.
손목엔 자살 시도 상처를, 배에는 제왕절개 흉터를 갖고 있는 여인과 그의 상처를 따뜻하게 핥아주는 남편, 스무 살 시절 그녀를 미혼모로 만들었던 옛 연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는 ‘뱀장어 스튜’의 말미는 이렇게 끝난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최근 묶어낸 첫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트’에 실린 총8편의 단편들도 결혼제도의 위선과 모순, 그 속에서 달아나고 싶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특유의 빼어난 심리묘사 솜씨로 요리해 내고 있다. 7년간의 중학교 교사생활을 거쳐 함께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미술평론가 남편 김종근 씨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있다. 얼마 전 동해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여자가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권지예(83)
어느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호화로운 집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모여 행복한 생일파티를 열고 있었다. 소담스런 과일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어 크게 한 입 베어먹는데 이빨이 몽땅 빠졌다. 놀라서 거울을 들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내 얼굴은 내가 한 아흔 살이나 먹으면 그렇게 될까. 처참하게 늙어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게 도무지 너무 기가 막혀 얼굴을 꼬집어보며 ‘제발 꿈이었으면…’하고 울다 깨어난 적이 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실제로 내 두 눈꼬리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만져 확인하면서도 알지 못할 두려움으로 펑펑 울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30대를 보내고 한국에 온 건 내 나이 마흔 살이 되었을 때다. 한국에서 마흔이 넘게 되자 ‘아 이제 여자로선 다 된거야’ 이렇게 맥없이 생각하게도 되었다. 마흔 살 넘은 여자는 유효기간 지난 식빵덩어리로나 보아주는 것 같고, 무슨 세대, 무슨 세대 하며 무슨 놈의 신종 세대를 그렇게나 자주 업그레이드 하는지. 특히 마흔 살 넘은 ‘아줌마’는 그런 세대에 어디 소속할 데도 없고, 고물취급을 받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골동품도 아니고, 부속도 없어 폐기처분되는 고장난 가전제품 같은 신세로 내게는 여겨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관심 밖이니 그게 더 자유롭게도 느껴질 것도 같은데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하던 대로 극장에 혼자 가서 영화도 보고 시내에서 배고프면 삼겹살집에 가서 혼자 고기 구워먹고, 배낭 메고 혼자 며칠 여행을 가기도 해보니 아무도 나를 정상으로 봐주지 않는 듯 했다. 여행지에서 여관에 들 때면 주인이, “혼자세요?” 그러며 당연히 뒤에 웬 놈팽이가 하나 오겠지, 그러는 눈치다가 정말 혼자라는 걸 알면 받을 돈 다 받으면서 찝찝해했다
심지어는 채팅도 하고 번개도 하는 자유로운 신세대 주부조차도 내가 용감하다 못해 외국물을 좀 잘못 먹은 살짝 돈 별종으로 보는 듯했다. 세상에! 어떻게 여자 혼자! 아무도 여자 혼자 다니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여자로 봐주는 건가? 처음엔 속으로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래 그런지 혼자 다니는 여자를 보기 힘들고 특히 중년여자들은 모이면 내 보기에도 방약무인으로 보였다.
한국에 귀국했을 때 논문을 다 마치고 오질 못해서 나는 논문을 마무리해서 학위를 받으러 혼자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논문발표회 날짜까지 시간이 남아돌아 공연히 숙박비 버리느니 여행이나 하자고 생각해 5박 6일 일정의 영국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호텔에 방 배정을 해주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 룸메이트가 되었다. 속으로 왜 하필 할머니랑… 예전에 한국에서 병원에 잠깐 입원했을 때 할머니들이랑 병실을 쓴 기억이 있어서 좀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거다. 간혹 노인들이란 사사건건 간섭에, 또 어른 대접은 얼마나 바라고 삐치긴 얼마나 잘 삐치는지. 오죽하면 노파심이라 그럴까.
어쨌건 할머니와 나는 런던 특유의 아주 좁은 옛날식 호텔에서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 나는 생판 모르는 외국인과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 특히 깐깐해 보이는 프랑스 할머니와 지내는 것에 잔뜩 긴장해 있었다.
쟌느라는 이름의 그 할머니는 무척 예절 발랐다. 또 깔끔하기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먼저 양해를 구하고, 욕실을 쓰고 나면 먼지 하나 없이 해놓을 뿐더러,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침구와 옷정리, 화장, 내가 깰 무렵이면 귓불에 살짝 향수를 뿌리며 단장을 마쳤다. 내가 깰까봐 커튼도 올리지 않은 박명 속에서 소리도 없이 말이다.
쟌느라는 이름의 그 할머니는 무척 예절 발랐다. 또 깔끔하기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먼저 양해를 구하고, 욕실을 쓰고 나면 먼지 하나 없이 해놓을 뿐더러,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침구와 옷정리, 화장, 내가 깰 무렵이면 귓불에 살짝 향수를 뿌리며 단장을 마쳤다. 내가 깰까봐 커튼도 올리지 않은 박명 속에서 소리도 없이 말이다.
차차 쟌느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게 되었다. 그녀는 73세, 평생 독신이고, 구청의 공무원으로 30년을 일했다. 자주 영국을 찾는 것은 중세의 복식과 장식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 탐방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녀는 그러며 늘 보는 책인지 손때가 많이 묻은 복식사책을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유럽은 물론 세계의 곳곳을 여행했던 이야기며,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의 신상과 관계도 없는 그런 일에 그렇게 기쁨을 느끼다니.
그 여행은 현지에서는 자유여행이었는데, 그녀는 런던에 대해 친절하게 정보는 주었지만 빈말이라도 날더러 같이 다니자는 둥 하질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어슬렁대다가 저녁이면 호텔로 돌아왔다. 한데 그렇게 혼자 다니는 자유로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자연 저녁엔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게 되었는데, 젊었을 때 이태리에서 잘생긴 이태리 남자와 하룻밤 연애한 얘기, 일본 여자친구와 그 남편과 셋이 좋은 친구로 지내다 여자친구가 죽고난 후 일본에 혼자 사는 친구의 남편이 일본에 다녀가라고 하지만 생전의 여자친구를 생각해 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할 때의 73세 쟌느의 얼굴은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물었다. “쟌느, 혼자 산 걸 후회하지 않나요?” 그녀가 대답했다. “오 아니, 난 내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불어로 “profiter mon existence”란 표현을 썼다(그후 그 말은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게 된다). 내친 김에 내가 또 물었다. “쓸쓸하지 않아요? 지금?” 그러자 그녀가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혼자죠.”
마지막 밤, 가족들을 위해 산 선물을 가방에 챙기느라 한참 부시럭대고 있는데, 잠자리에서 돋보기를 쓰고 스탕달의 <적과 흙>을 읽고 있던 쟌느가 물었다. “쏘냐(내 본명인 순예를 곧잘 이렇게 부르는 프랑스사람들이 제법 있다), 행복해요?”
요즘 ‘여자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간혹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것이 더욱 두려울 것 같다. 추하게 주름진 얼굴로 지레 가족과 남들에게 소외될까 두렵고, 그래서 더욱 집착하게 되고, 결국 남을 괴롭히는 노인네가 되는 건 아닐까.
가끔 쟌느를 생각해보곤 한다. 결국 ‘혼자’인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지….
올 이상문학상은 한국 문단에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던 늦깍이 신인에게 돌아갔다. 피카소가 마지막 연인에게 바쳤다는 동명의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낯설고도 매혹적인 작품 ‘뱀장어 스튜’로 한국 최고의 문학상을 거머쥔 권지혜 동창(83)이 그 주인공.
프랑스 유학생활 8년 후 재작년에야 귀국, 서른아홉에 등단한 신예이지만 1차 투표에서 심사위원 7명이 만장일치로 그의 작품을 밀었을 만큼 ‘뱀장어 스튜’는 평단으로부터 압도적인 주목과 찬사를 받았다.
‘사랑 이야기와 존재 이야기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진행시키는 뛰어난 표현 기법’ ‘요리와 섹스를 접목시켜 인간관계의 근원을 되짚은 것’ ‘한 여인의 사랑과 상처, 갈등을 신선한 상징과 비유로 격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등이 그의 작품에 쏟아진 호평들.
손목엔 자살 시도 상처를, 배에는 제왕절개 흉터를 갖고 있는 여인과 그의 상처를 따뜻하게 핥아주는 남편, 스무 살 시절 그녀를 미혼모로 만들었던 옛 연인의 시점이 번갈아 등장하는 ‘뱀장어 스튜’의 말미는 이렇게 끝난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최근 묶어낸 첫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트’에 실린 총8편의 단편들도 결혼제도의 위선과 모순, 그 속에서 달아나고 싶어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특유의 빼어난 심리묘사 솜씨로 요리해 내고 있다. 7년간의 중학교 교사생활을 거쳐 함께 프랑스 유학을 떠났던 미술평론가 남편 김종근 씨와의 사이에 두 아이를 두고 있다. 얼마 전 동해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여자가 나이 들어 간다는 것” 권지예(83)
어느날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호화로운 집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모여 행복한 생일파티를 열고 있었다. 소담스런 과일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어 크게 한 입 베어먹는데 이빨이 몽땅 빠졌다. 놀라서 거울을 들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내 얼굴은 내가 한 아흔 살이나 먹으면 그렇게 될까. 처참하게 늙어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게 도무지 너무 기가 막혀 얼굴을 꼬집어보며 ‘제발 꿈이었으면…’하고 울다 깨어난 적이 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실제로 내 두 눈꼬리에는 눈물이 배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만져 확인하면서도 알지 못할 두려움으로 펑펑 울어버렸던 적이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프랑스에서 30대를 보내고 한국에 온 건 내 나이 마흔 살이 되었을 때다. 한국에서 마흔이 넘게 되자 ‘아 이제 여자로선 다 된거야’ 이렇게 맥없이 생각하게도 되었다. 마흔 살 넘은 여자는 유효기간 지난 식빵덩어리로나 보아주는 것 같고, 무슨 세대, 무슨 세대 하며 무슨 놈의 신종 세대를 그렇게나 자주 업그레이드 하는지. 특히 마흔 살 넘은 ‘아줌마’는 그런 세대에 어디 소속할 데도 없고, 고물취급을 받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다. 골동품도 아니고, 부속도 없어 폐기처분되는 고장난 가전제품 같은 신세로 내게는 여겨졌다.
그렇다면 차라리 관심 밖이니 그게 더 자유롭게도 느껴질 것도 같은데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하던 대로 극장에 혼자 가서 영화도 보고 시내에서 배고프면 삼겹살집에 가서 혼자 고기 구워먹고, 배낭 메고 혼자 며칠 여행을 가기도 해보니 아무도 나를 정상으로 봐주지 않는 듯 했다. 여행지에서 여관에 들 때면 주인이, “혼자세요?” 그러며 당연히 뒤에 웬 놈팽이가 하나 오겠지, 그러는 눈치다가 정말 혼자라는 걸 알면 받을 돈 다 받으면서 찝찝해했다
심지어는 채팅도 하고 번개도 하는 자유로운 신세대 주부조차도 내가 용감하다 못해 외국물을 좀 잘못 먹은 살짝 돈 별종으로 보는 듯했다. 세상에! 어떻게 여자 혼자! 아무도 여자 혼자 다니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여자로 봐주는 건가? 처음엔 속으로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도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래 그런지 혼자 다니는 여자를 보기 힘들고 특히 중년여자들은 모이면 내 보기에도 방약무인으로 보였다.
한국에 귀국했을 때 논문을 다 마치고 오질 못해서 나는 논문을 마무리해서 학위를 받으러 혼자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 논문발표회 날짜까지 시간이 남아돌아 공연히 숙박비 버리느니 여행이나 하자고 생각해 5박 6일 일정의 영국 패키지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호텔에 방 배정을 해주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 룸메이트가 되었다. 속으로 왜 하필 할머니랑… 예전에 한국에서 병원에 잠깐 입원했을 때 할머니들이랑 병실을 쓴 기억이 있어서 좀 언짢은 기분이 들었던 거다. 간혹 노인들이란 사사건건 간섭에, 또 어른 대접은 얼마나 바라고 삐치긴 얼마나 잘 삐치는지. 오죽하면 노파심이라 그럴까.
어쨌건 할머니와 나는 런던 특유의 아주 좁은 옛날식 호텔에서 함께 동거하게 되었다. 나는 생판 모르는 외국인과 호텔에서 잠을 자는 것, 특히 깐깐해 보이는 프랑스 할머니와 지내는 것에 잔뜩 긴장해 있었다.
쟌느라는 이름의 그 할머니는 무척 예절 발랐다. 또 깔끔하기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먼저 양해를 구하고, 욕실을 쓰고 나면 먼지 하나 없이 해놓을 뿐더러,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침구와 옷정리, 화장, 내가 깰 무렵이면 귓불에 살짝 향수를 뿌리며 단장을 마쳤다. 내가 깰까봐 커튼도 올리지 않은 박명 속에서 소리도 없이 말이다.
쟌느라는 이름의 그 할머니는 무척 예절 발랐다. 또 깔끔하기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먼저 양해를 구하고, 욕실을 쓰고 나면 먼지 하나 없이 해놓을 뿐더러, 부지런하기까지 했다. 아침이면 나보다 먼저 일어나 침구와 옷정리, 화장, 내가 깰 무렵이면 귓불에 살짝 향수를 뿌리며 단장을 마쳤다. 내가 깰까봐 커튼도 올리지 않은 박명 속에서 소리도 없이 말이다.
차차 쟌느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게 되었다. 그녀는 73세, 평생 독신이고, 구청의 공무원으로 30년을 일했다. 자주 영국을 찾는 것은 중세의 복식과 장식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 탐방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녀는 그러며 늘 보는 책인지 손때가 많이 묻은 복식사책을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유럽은 물론 세계의 곳곳을 여행했던 이야기며,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게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의 신상과 관계도 없는 그런 일에 그렇게 기쁨을 느끼다니.
그 여행은 현지에서는 자유여행이었는데, 그녀는 런던에 대해 친절하게 정보는 주었지만 빈말이라도 날더러 같이 다니자는 둥 하질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어슬렁대다가 저녁이면 호텔로 돌아왔다. 한데 그렇게 혼자 다니는 자유로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자연 저녁엔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게 되었는데, 젊었을 때 이태리에서 잘생긴 이태리 남자와 하룻밤 연애한 얘기, 일본 여자친구와 그 남편과 셋이 좋은 친구로 지내다 여자친구가 죽고난 후 일본에 혼자 사는 친구의 남편이 일본에 다녀가라고 하지만 생전의 여자친구를 생각해 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할 때의 73세 쟌느의 얼굴은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물었다. “쟌느, 혼자 산 걸 후회하지 않나요?” 그녀가 대답했다. “오 아니, 난 내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고 싶었어요.” 그녀는 불어로 “profiter mon existence”란 표현을 썼다(그후 그 말은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게 된다). 내친 김에 내가 또 물었다. “쓸쓸하지 않아요? 지금?” 그러자 그녀가 조금 쓸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혼자죠.”
마지막 밤, 가족들을 위해 산 선물을 가방에 챙기느라 한참 부시럭대고 있는데, 잠자리에서 돋보기를 쓰고 스탕달의 <적과 흙>을 읽고 있던 쟌느가 물었다. “쏘냐(내 본명인 순예를 곧잘 이렇게 부르는 프랑스사람들이 제법 있다), 행복해요?”
요즘 ‘여자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간혹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것이 더욱 두려울 것 같다. 추하게 주름진 얼굴로 지레 가족과 남들에게 소외될까 두렵고, 그래서 더욱 집착하게 되고, 결국 남을 괴롭히는 노인네가 되는 건 아닐까.
가끔 쟌느를 생각해보곤 한다. 결국 ‘혼자’인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만끽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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