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鄕 寫 牧丹 (우향 사 목단)
雲甫 寫 雙鷄 (운보 사 쌍계)
지난 목요일 운보미술관에서 본 그림 위의 설명이다.
세로가 가로의 두배 반은 되는 긴 화지위에
윗쪽엔 아내 우향이 그린 연분홍빛 목단이 얌전히 그려져 있고
아랫쪽엔 남편 운보의 힘찬 필치에 행복한 닭 한쌍이 놀고 있다.
그림을 대하는 순간 내가 본 건 목단도 쌍계도 아닌 夫婦의 사랑이었다.
"그래, 이건 사랑화 다"
운보와 우향의 부부애는 그들의 유명도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도 잘 알려져왔다.
거리에서 목청 높여 싸우는 우향과 운보의 이야기는
종종 신문의 가싶난을 메꾸기도 했으니까.
농인(聾人)인 남편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는 만큼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우향의 속앓이도 깊었던가보다.
"우향은 운보의 청각장애로 숨막힐 지경으로 답답할 때면
돌다듬이 방망이질을 밤새하였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고
아주 오래전, 우향의 타계 후, 소설가 박경리씨가
오랜 벗으로써 우향에 대한 회고를 쓴 수필을 읽으며
내 마음이 아려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러나, 현실의, 일상의 그 깊은 고통, 좌절, 번뇌속에서도
이렇게 영혼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부부였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인가.
미당 서 정주선생께서 중풍에 쓰러진 부인의 손톱 발톱을 항상
당신께서 직접 챙겨주셨다는 소문도 우리를 흐뭇하게 했다.
오랜 병석의 아내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던 미국의 작가,
마크 투웨인도 부부애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먼저 간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6년간 붓을 들지 않았다는
화가, 마크 샤갈의 그림의 세계가
우리에게 항상 환상과, 꿈, 동화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은
그 진원지에 부부사랑이 뿌리내려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평자들은 말한다.
미국에 계신 나의 큰 형부의 현직은 "남자간호사"다.
본인은 물론 자신이 그런 직업을 가진 지 조차 모른다.
우리 부부가 지난 겨울 그곳에 들렀을 때 우리가 직접 목격하고
우리끼리 붙인 그의 직업이다.
이제 곧 70을 바라보는 노부부는 이렇게
조금 나은 한쪽이 조금 더 불편한 한쪽을 위해
체면과 시선을 개의치 않고 사랑을 베풀고 있다.
예술로 까지 승화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 보듬어 주며, 아니 그냥 곁에 덤덤히 있어 주며
편안히, 조용히 함께 흘러가는 부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은, 결국, 낭만과 열정으로부터 싻을 틔우나
인내와 수고와 헌신 없이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열매을 볼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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