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교수님의 강연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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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숙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6-03-29 23:51 조회1,106회 댓글0건본문
28일(화)에 있었던 2006년도 춘계 강좌에 20명 내외의 동기들이 참셕하여, 병마와 힘겹게 투병중임에도 솔직하고 열성을 다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해 주신 강연에 가슴 뭉클하면서도 따뜻함을 느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회장과 임원선출이 있었고, 이어서 오랫만에 만난 반가운 동기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며 점심을 즐긴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참석해준 동기들께 감사하며, 참석치 못한 친구들에게 게시판에 올린 강연 내용 요약을 옮겨 놓습니다. 강연 끝에 나눠준 시와 장교수님의 코멘트는 다음에 싣겠습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나의 아름다운 경력"이란 주제로 강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박용제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에서 언급된 '예기치않은 운명'과 싸워 가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것이 나의 인생과 연관되어 더욱 마음에 다가옵니다. 지난번 다른 곳에서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가'로 청탁을 받았는데, 그때 썼던 글을 인용하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저는 손끝이 무디어서 수놓는것을 좋아하지않았는데, 장애인의 직업으로는 남자는 시계수리나 목공일, 여자는 수를 놓아야하는 것이 정해진듯했습니다. 수를 놓지않고 발 붙일고 살수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그나마 5세에 한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을수있는 능력, 결국 공부하는 재주밖에는 없었든 듯합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남비머리'라고 칭하셨는데, 그것은 시각적으로 본것을 놓치지않고 기억하는 제 좋은 기억력, 그리고 곧 잊어버리는 제 머리를 일컬으심이었지요. 지금까지 일생을 벼락치기 공부로 버틴것 같습니다.
초등 6학년때 장애인은 중 1 입학시험 자체를 볼수없었기에 제 아버지는 각 중학교마다 찾아다니시며, 시험만이라도 보게해달라고 탄원을 하셨고, 결국 서울사대 부중에서 체력장 면제 없이 시험을 응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력장에서 점수가 깍일테니 만일 학과가 만점이 안되면 중학입학을 못할것이고, 그러면 평생 수를 놓고 살아야할까봐, 하루 1~2시간 취침을 하며 공부했습니다. 잠깐 잠이 들어도 한개를 틀려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지금도 꿈을 꾸면 1개를 틀리는 꿈을 꿉니다. 실제 시험에서는 1개를 틀렸지만 기적적으로 저는 합격을 했고, 서울사대 부고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공부할수 있었습니다.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니, 머리로 이 세상헤 발붙여야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세상에 공부만큼 쉬운것이 없습니다. 몸이 편하고 공부한다고 대접받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2001년 보스턴으로 안식년을 갔는데, 혼자서 일년동안 밥해먹고, 설겆이, 빨래, 쓰레기 처리등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 내린 결론은 이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살림이고, 제일 쉬운게 공부구나 하는것이었습니다. 석사, 박사 학위취득후 교수가 되어 해피 엔딩이지요.
하지만 진짜 얘기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남도의 발견'이란 tv 프로그램중 제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subtitle로 나오는 제 경력란에 '현재 암투병중'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경력이람 하고 불쾌했지만, 암때문에 실상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우고, 투병을 하다가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것을 배웠기에 인생 최대의 경력이란 생각도 듭니다. 칼릴지브란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저는 '나쁜짓 않하면 잘 살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실제 남을 위해 한발 나서는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Audry Hepburn도 노년의 봉사로 눈에 띕니다. 이제까지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준것은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의 사랑덕이며 이젠 자신이 갚아야할때라며, 봉사하는 그녀가 아름답지요.
지지난주로 24번째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냈습니다. 바쁜 와중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분 누르다가 문득 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요, 3월 17일 1시에 암센터 홍보대사인 김형곤씨의 특강 포스터였어요. 그는 웃음을 선사하며 아픈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것인데, 정작 위로 하려던 나는 살아있고, 그는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은 왠 아이러니인지요.
Steve Jobs가 실제 췌장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었으나, 그는 기적적으로 회생하고, 그는 '죽음은 삶을 remodel 한다'고 했습니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활기없고, 의욕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것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 병원에는 '살아있다는 증거를 씩씩하게 보이며, 생명에 대한 예우를 청결하고 단정함으로 증명하기도 하고, 병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환자들이 많습니다. 신영복시의 '감옥속에서의 사색'에 보면 '아무리 큰 기가막힌 비극도 작은 기쁨으로 인해 상쇄될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3~4시간 링겔을 맞아야하는 상황에서도, 백혈구 수치가 3000이 넘어야만 항암치료가 가능한데, 그 3000이 넘으면 기쁘고, 또 환자수가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하는 상황에서 치료받을 수있는 자리가 나면 또 기쁩니다.
함께 오늘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한 노승이 평생 하던일이던 장작패기와 샘물 깃기를 득도후 다시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오~ 정말 놀라운지고. 내가 장작을 펴고 샘물을 깃고있구나~' 했던 것처럼,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오 정령 놀라운 지고~ 살아서 글을 쓰고 넓은 하늘을 바라 보고 있구나'하고 쓸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한 만큼 산다고 믿습니다. >
참석해준 동기들께 감사하며, 참석치 못한 친구들에게 게시판에 올린 강연 내용 요약을 옮겨 놓습니다. 강연 끝에 나눠준 시와 장교수님의 코멘트는 다음에 싣겠습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나의 아름다운 경력"이란 주제로 강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박용제시인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에서 언급된 '예기치않은 운명'과 싸워 가면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것이 나의 인생과 연관되어 더욱 마음에 다가옵니다. 지난번 다른 곳에서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가'로 청탁을 받았는데, 그때 썼던 글을 인용하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저는 손끝이 무디어서 수놓는것을 좋아하지않았는데, 장애인의 직업으로는 남자는 시계수리나 목공일, 여자는 수를 놓아야하는 것이 정해진듯했습니다. 수를 놓지않고 발 붙일고 살수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그나마 5세에 한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을수있는 능력, 결국 공부하는 재주밖에는 없었든 듯합니다. 제 어머니는 저를 '남비머리'라고 칭하셨는데, 그것은 시각적으로 본것을 놓치지않고 기억하는 제 좋은 기억력, 그리고 곧 잊어버리는 제 머리를 일컬으심이었지요. 지금까지 일생을 벼락치기 공부로 버틴것 같습니다.
초등 6학년때 장애인은 중 1 입학시험 자체를 볼수없었기에 제 아버지는 각 중학교마다 찾아다니시며, 시험만이라도 보게해달라고 탄원을 하셨고, 결국 서울사대 부중에서 체력장 면제 없이 시험을 응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력장에서 점수가 깍일테니 만일 학과가 만점이 안되면 중학입학을 못할것이고, 그러면 평생 수를 놓고 살아야할까봐, 하루 1~2시간 취침을 하며 공부했습니다. 잠깐 잠이 들어도 한개를 틀려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고, 지금도 꿈을 꾸면 1개를 틀리는 꿈을 꿉니다. 실제 시험에서는 1개를 틀렸지만 기적적으로 저는 합격을 했고, 서울사대 부고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공부할수 있었습니다. 육체의 기능이 떨어지니, 머리로 이 세상헤 발붙여야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세상에 공부만큼 쉬운것이 없습니다. 몸이 편하고 공부한다고 대접받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2001년 보스턴으로 안식년을 갔는데, 혼자서 일년동안 밥해먹고, 설겆이, 빨래, 쓰레기 처리등을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때 내린 결론은 이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살림이고, 제일 쉬운게 공부구나 하는것이었습니다. 석사, 박사 학위취득후 교수가 되어 해피 엔딩이지요.
하지만 진짜 얘기는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남도의 발견'이란 tv 프로그램중 제가 텔레비전에 나왔는데,subtitle로 나오는 제 경력란에 '현재 암투병중'이란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저게 무슨 경력이람 하고 불쾌했지만, 암때문에 실상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우고, 투병을 하다가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것을 배웠기에 인생 최대의 경력이란 생각도 듭니다. 칼릴지브란이 '보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저는 '나쁜짓 않하면 잘 살고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실제 남을 위해 한발 나서는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Audry Hepburn도 노년의 봉사로 눈에 띕니다. 이제까지 자신을 절망에서 구해준것은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의 사랑덕이며 이젠 자신이 갚아야할때라며, 봉사하는 그녀가 아름답지요.
지지난주로 24번째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냈습니다. 바쁜 와중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여러분 누르다가 문득 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요, 3월 17일 1시에 암센터 홍보대사인 김형곤씨의 특강 포스터였어요. 그는 웃음을 선사하며 아픈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것인데, 정작 위로 하려던 나는 살아있고, 그는 세상을 떠났으니, 그것은 왠 아이러니인지요.
Steve Jobs가 실제 췌장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었으나, 그는 기적적으로 회생하고, 그는 '죽음은 삶을 remodel 한다'고 했습니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활기없고, 의욕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것으로 그려지지만, 실제로 병원에는 '살아있다는 증거를 씩씩하게 보이며, 생명에 대한 예우를 청결하고 단정함으로 증명하기도 하고, 병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환자들이 많습니다. 신영복시의 '감옥속에서의 사색'에 보면 '아무리 큰 기가막힌 비극도 작은 기쁨으로 인해 상쇄될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3~4시간 링겔을 맞아야하는 상황에서도, 백혈구 수치가 3000이 넘어야만 항암치료가 가능한데, 그 3000이 넘으면 기쁘고, 또 환자수가 많아서 오래 기다려야하는 상황에서 치료받을 수있는 자리가 나면 또 기쁩니다.
함께 오늘을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한 노승이 평생 하던일이던 장작패기와 샘물 깃기를 득도후 다시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오~ 정말 놀라운지고. 내가 장작을 펴고 샘물을 깃고있구나~' 했던 것처럼,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오 정령 놀라운 지고~ 살아서 글을 쓰고 넓은 하늘을 바라 보고 있구나'하고 쓸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한 만큼 산다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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