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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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14-04-14 18:21 조회534회 댓글0건본문
‘가 고 파’
정 소 영(전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내 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을 국민 애창곡이다. 굳이 마산(馬山)태생이 아니어도 “그 파란 물”은 고향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에 노래방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재미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불렀을 노래가 ‘가고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이야 이곳 아틀란타에서도 한국행 비행기가 매일 뜨지만 60년대에는 한국 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고 국제전화도 너무 비싸서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국가에서 허용하는 유학자금 200불 달랑 들고 와 힘겹게 공부하던 ‘고학생’ 시절, ‘가고파’는 우리의 향수를 달래주는 좋은 노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고파’는 4절에서 끝나지만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님이 지은 가사는 10절까지로 돼 있다. 이 가곡이 워낙 많이 불려 지면서 4절 이후의 가사가 사장돼버린 느낌이 들었었는데 다행히 작곡자 김동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10절까지의 가사로 ‘가고파’ 전곡을 완성해 놓으셨다. 이미 20여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귀로 듣고, 입으로 부르며 즐기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마치 열병 앓듯 음악을 짝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외한이 보기에 10절까지 새롭게 완성된 ‘가고파’는 노산의 시를 잘 살린 매우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선율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변조(變調)가 중간에 삽입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도 좋지만 한국인이 쓴 시에 한국인이 음률을 붙인 탓인지 노래를 해 보면 가사가 입에 착 붙는다. 특히 마지막 절에서는 기독교적인 냄새마저 풍긴다. “거기 아침은 오고/ 또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이를 두고 어떤 목사님은 노산이 미션스쿨인 마산 창신학교 출신일 것이라고 한다.
노산의 가사 7절에 보면 “처녀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라는 구절이 나온다. 7절은 음악적으로도 이 곡의 압권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서 영탄(詠嘆)으로 강조한 것을 보면 분명 작곡자가 인생의 후반부에 작곡하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작곡자 스스로 가사가 주는 특별한 의미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로(初老)에 접어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잃어버린 젊음은 참 아깝다. 그래서 흔히들 “몇 년 만 젊었으면...” 하나보다. 그러나 마냥 지나간 세월이 아깝다고 애석해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일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6,70대 장년들은 추억의 영화중에서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주연한 ‘초원의 빛’을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젊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였던가? 제목 ‘초원의 빛’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William Wordsworth의 시(詩)에서 취했다.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el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한때는 그처럼 찬란했던 풀의 광채와 꽃의 영광이 새겨진 시간들을 돌이킬 수 없다하여 슬퍼하는 대신에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겠다는 뜻이다. 노년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대목이다.
약 반세기 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망향을 달래 주었던 ‘가고파’.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를 그 시절에 불렀더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2011년 7월 27일 미주 중앙일보 애틀랜타 판
정 소 영(전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내 고향 남쪽 바다”로 시작되는 가곡 ‘가고파’는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을 국민 애창곡이다. 굳이 마산(馬山)태생이 아니어도 “그 파란 물”은 고향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1960년대에 노래방이 있었더라면 적어도 재미 유학생들이 가장 많이 불렀을 노래가 ‘가고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이야 이곳 아틀란타에서도 한국행 비행기가 매일 뜨지만 60년대에는 한국 가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였고 국제전화도 너무 비싸서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국가에서 허용하는 유학자금 200불 달랑 들고 와 힘겹게 공부하던 ‘고학생’ 시절, ‘가고파’는 우리의 향수를 달래주는 좋은 노래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고파’는 4절에서 끝나지만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님이 지은 가사는 10절까지로 돼 있다. 이 가곡이 워낙 많이 불려 지면서 4절 이후의 가사가 사장돼버린 느낌이 들었었는데 다행히 작곡자 김동진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 10절까지의 가사로 ‘가고파’ 전곡을 완성해 놓으셨다. 이미 20여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냥 음악이 좋아서 귀로 듣고, 입으로 부르며 즐기고 가슴으로 느끼면서 마치 열병 앓듯 음악을 짝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문외한이 보기에 10절까지 새롭게 완성된 ‘가고파’는 노산의 시를 잘 살린 매우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선율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변조(變調)가 중간에 삽입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도 좋지만 한국인이 쓴 시에 한국인이 음률을 붙인 탓인지 노래를 해 보면 가사가 입에 착 붙는다. 특히 마지막 절에서는 기독교적인 냄새마저 풍긴다. “거기 아침은 오고/ 또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이를 두고 어떤 목사님은 노산이 미션스쿨인 마산 창신학교 출신일 것이라고 한다.
노산의 가사 7절에 보면 “처녀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라는 구절이 나온다. 7절은 음악적으로도 이 곡의 압권이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면서 영탄(詠嘆)으로 강조한 것을 보면 분명 작곡자가 인생의 후반부에 작곡하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작곡자 스스로 가사가 주는 특별한 의미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로(初老)에 접어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잃어버린 젊음은 참 아깝다. 그래서 흔히들 “몇 년 만 젊었으면...” 하나보다. 그러나 마냥 지나간 세월이 아깝다고 애석해 하면서 노년을 보내는 일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6,70대 장년들은 추억의 영화중에서 워렌 비티와 나탈리 우드가 주연한 ‘초원의 빛’을 기억할 것이다. 얼마나 젊은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였던가? 제목 ‘초원의 빛’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William Wordsworth의 시(詩)에서 취했다.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el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한때는 그처럼 찬란했던 풀의 광채와 꽃의 영광이 새겨진 시간들을 돌이킬 수 없다하여 슬퍼하는 대신에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겠다는 뜻이다. 노년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 대목이다.
약 반세기 전,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망향을 달래 주었던 ‘가고파’.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를 그 시절에 불렀더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2011년 7월 27일 미주 중앙일보 애틀랜타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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