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우와 풀라맹고의 본고장 세비야(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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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3-10-17 20:52 조회1,373회 댓글23건본문
리스본을 떠나 스페인의 세비야를 향해 가는데 태조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망망한 바다 위에 길이가 17킬로미터나 되는 바스코 다 가마 다리를 건넜다. 개통한지 2년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연결하며 하루 35만대가 통행하는데 포르투갈 입국 때에만 통행료를 낸다. 포르투갈을 벗어나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까지 포도밭, 밀밭, 올리브 밭의 끝없는 연속이었다. 올리브나무는 5년을 주기로 뽑고 새로 심어야 좋은 열매가 달린다. 올리브 기름은 <신이 인간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며 매일 아침 눈뜨면 마시는 사람을 만났는데 건강을 장담했다. 올리브 열매는 파리에서 생활할 때 잘먹었는데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우리 집은 식용유를 올리브 기름으로 바꾸었다. 어떤 발레리나가 빵 한쪽에 올리브 2개로 몸매를 유지한다는 얘기가 기억난다. 땅이 비옥해서 담배, 밀, 해바라기도 많이 생산된다는 말이 실감난다.
세비야가 가까워지니까 투우의 상징인 소 동상이 언덕 위에 보였고 21킬로 지점부터 광활한 밀밭이 시작하면서 기원전 3백년 이베르 족이 들어와 3명의 로마황제를 배출했다는 이탈리카(Italica))라는 곳을 지났다. 15-16세기에는 이베리아의 중심지이었고 콜롬부스와 마젤란이 신대륙 항해를 출발한곳이며 15세기에 인도북부의 집시가 들어와 플라맹고 춤의 발생지가 되었다. 또한 투우의 고장이기도 하며 칼맨, 세비야의 이발사, 돈 죠바니 등의 유명한 오페라의 무대이기도 한 예술과 문화의 도시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나는 왠지 세비야가 낯설지 않았다.
투우와 플라맹고의 본고장,
콜럼부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해 출항하고 발견하고 돌아온 도시 세비야!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처음 방문한곳은 세비야 시내를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의 산 텔모 다리 근처에 콜롬부스와 마젤란의 항해출발을 기념하고 지나가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황금의 탑>이었다. 외벽에 금색 타일을 입힌 12각 형으로 된 탑인데 금을 방불케 한다. 그곳의 기념품을 사 와서 냉장고에 붙여놓으니 항상 세비야가 내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다음에 포르투갈의 퐁발 후작 부인이 기증했다는 시민의 휴식 공간인<마리아 루이사 공원>옆에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 때 만든 <스페인 광장>에서 이베리아 종족들만의 문화 집합 장소임을 확인했다. 넓은 타일 바닥의 광장을 지나면 궁전을 방불케 하는 4개의 왕조(레온,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로)를 상징하는 4개의 건물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기념하는 2개의 연못이 있다. 건물은 이슬람 풍의 무데하르 양식으로 내부는 각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를 타일로 벽에 그려 놓아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베리아인들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을 접하니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요즈음 아시아인들만의 문화공간의 필요성도 느꼈다.
시내 중심에 오페라 카르맨의 무대였던 담배 공장이 지금은 법대와 투우사 양성학교로 유명한 투우사를 배출한다. 유명한 투우사는 경기 당 1억 원을 받으며, 한 경기에 3명이 2마리씩 6마리를 죽이는데 죽은 투우고기를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즐겨 먹기도 한다. 시내에는 로마의 황제 시저가 2번 세비야에 온 것을 기념해서 <창을 쏘는 시저의 동상>이 있고 이슬람인들이 만들어 준 <유대인 거리>는 협소하지만 집마다 정원이 있고 통풍이 잘되도록 설계가 잘되었다. 이슬람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배려에서 넉넉한 관용을 발견했다.
세계 3대성당(런던의 바울 성당, 로마의 베드로 성당)중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은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어서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원래 이슬람사원인데 1401년~1511년 에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기념으로 무데하르 양식에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어 건축되었다. 대성당 중앙에 사방 14미터의 사각형 탑인 <히랄다 탑>은 이슬람교도들이 12세기 말에 세웠는데 그 탑 위에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고,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바람불면 돌아가는 풍향 계(히랄다:Giralda) 역할을 하게 했다. 12시경 우리일행이 히랄다 탑을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는데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져 천상에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탑은 왕이 말을 타거나 감독이 당나귀 타고 올라가도록 설계되었다. 높이가 98미터인 탑은 1565~68년에 완성되었고 처음에 그리스교도들은 탑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부수지 못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콜롬부스는 1484년 포르투갈 왕 후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탐험을 설명하였으나 바스코 다가마에게 희망 봉 루트를 준비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중이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이사벨이 콜롬버스를 등용해서 스페인이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
대성당내부 정면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대륙에서 싣고 온 금 1.5톤으로 만든 예수님 생애 조각과 세비야의 수호신인 성모상이 안치된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부스의 아들이 아버지 항해에 관한 책을 출판한 공로로 성당 안에 안치되었고 아라곤 등 4명의 스페인 국왕이 쿠바에서 시신 가져온(?) 콜롬부스의 관을 받들고 있는 조각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화가 무리요의 대표작인 성 안토니오가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내려왔다는 [산 안토니오의 환상]이 그려진 안토니오 예배당을 비롯해 마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꼬 등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방불케 하며 국보급의 보석과 왕관 등도 많이 있다. 마침 그곳에서 배낭 여행중인 중년의 한국여성 3명을 만나 함께 관람을 했다. 이슬람 사원에 덧붙여지은 대성당은 이슬람과 카톨릭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인류역사에 귀중한 예술품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귀감이 되는 역사적인 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비야가 가까워지니까 투우의 상징인 소 동상이 언덕 위에 보였고 21킬로 지점부터 광활한 밀밭이 시작하면서 기원전 3백년 이베르 족이 들어와 3명의 로마황제를 배출했다는 이탈리카(Italica))라는 곳을 지났다. 15-16세기에는 이베리아의 중심지이었고 콜롬부스와 마젤란이 신대륙 항해를 출발한곳이며 15세기에 인도북부의 집시가 들어와 플라맹고 춤의 발생지가 되었다. 또한 투우의 고장이기도 하며 칼맨, 세비야의 이발사, 돈 죠바니 등의 유명한 오페라의 무대이기도 한 예술과 문화의 도시다. 오페라를 좋아하는 나는 왠지 세비야가 낯설지 않았다.
투우와 플라맹고의 본고장,
콜럼부스가 신대륙 발견을 위해 출항하고 발견하고 돌아온 도시 세비야!
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이며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처음 방문한곳은 세비야 시내를 흐르는 과달키비르강의 산 텔모 다리 근처에 콜롬부스와 마젤란의 항해출발을 기념하고 지나가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운 <황금의 탑>이었다. 외벽에 금색 타일을 입힌 12각 형으로 된 탑인데 금을 방불케 한다. 그곳의 기념품을 사 와서 냉장고에 붙여놓으니 항상 세비야가 내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다음에 포르투갈의 퐁발 후작 부인이 기증했다는 시민의 휴식 공간인<마리아 루이사 공원>옆에 1929년 이베로 아메리카 박람회 때 만든 <스페인 광장>에서 이베리아 종족들만의 문화 집합 장소임을 확인했다. 넓은 타일 바닥의 광장을 지나면 궁전을 방불케 하는 4개의 왕조(레온, 카스티야, 아라곤, 나바로)를 상징하는 4개의 건물과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을 기념하는 2개의 연못이 있다. 건물은 이슬람 풍의 무데하르 양식으로 내부는 각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를 타일로 벽에 그려 놓아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베리아인들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을 접하니 세계화 시대를 맞이한 요즈음 아시아인들만의 문화공간의 필요성도 느꼈다.
시내 중심에 오페라 카르맨의 무대였던 담배 공장이 지금은 법대와 투우사 양성학교로 유명한 투우사를 배출한다. 유명한 투우사는 경기 당 1억 원을 받으며, 한 경기에 3명이 2마리씩 6마리를 죽이는데 죽은 투우고기를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즐겨 먹기도 한다. 시내에는 로마의 황제 시저가 2번 세비야에 온 것을 기념해서 <창을 쏘는 시저의 동상>이 있고 이슬람인들이 만들어 준 <유대인 거리>는 협소하지만 집마다 정원이 있고 통풍이 잘되도록 설계가 잘되었다. 이슬람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배려에서 넉넉한 관용을 발견했다.
세계 3대성당(런던의 바울 성당, 로마의 베드로 성당)중의 하나인 <세비야 대성당>은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어서 한참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원래 이슬람사원인데 1401년~1511년 에 이슬람교도를 물리친 기념으로 무데하르 양식에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어 건축되었다. 대성당 중앙에 사방 14미터의 사각형 탑인 <히랄다 탑>은 이슬람교도들이 12세기 말에 세웠는데 그 탑 위에 그리스도 교도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고,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바람불면 돌아가는 풍향 계(히랄다:Giralda) 역할을 하게 했다. 12시경 우리일행이 히랄다 탑을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는데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져 천상에 올라간 기분이 들었다. 탑은 왕이 말을 타거나 감독이 당나귀 타고 올라가도록 설계되었다. 높이가 98미터인 탑은 1565~68년에 완성되었고 처음에 그리스교도들은 탑을 없애려고 했지만 그 아름다움에 반해 부수지 못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인 콜롬부스는 1484년 포르투갈 왕 후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탐험을 설명하였으나 바스코 다가마에게 희망 봉 루트를 준비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와 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중이었다.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이사벨이 콜롬버스를 등용해서 스페인이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다.
대성당내부 정면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대륙에서 싣고 온 금 1.5톤으로 만든 예수님 생애 조각과 세비야의 수호신인 성모상이 안치된 왕실 예배당이 있다. 콜럼부스의 아들이 아버지 항해에 관한 책을 출판한 공로로 성당 안에 안치되었고 아라곤 등 4명의 스페인 국왕이 쿠바에서 시신 가져온(?) 콜롬부스의 관을 받들고 있는 조각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화가 무리요의 대표작인 성 안토니오가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가 내려왔다는 [산 안토니오의 환상]이 그려진 안토니오 예배당을 비롯해 마야, 벨라스케스, 엘 그레꼬 등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방불케 하며 국보급의 보석과 왕관 등도 많이 있다. 마침 그곳에서 배낭 여행중인 중년의 한국여성 3명을 만나 함께 관람을 했다. 이슬람 사원에 덧붙여지은 대성당은 이슬람과 카톨릭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인류역사에 귀중한 예술품이다. 이라크 전쟁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귀감이 되는 역사적인 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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