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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서 문화를 향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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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http://myhome.hanafos.com/~leeroh 작성일2003-11-28 20:23 조회1,362회 댓글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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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ime.hani.co.kr 연재
 
 마드리드를 출발해서 4시간만에 아라곤 자치주 수도인 사라고사(Zaragoza)에 도착했다. 기원전 로마시대부터 시작한 도시로 에브로강 가에 위치한 구 시가지의 대성당에 도착해 고대 로마 다리(Puento de Piedra)를 보니 고대도시임이 실감났다.

대성당은 기적을 나타낸 성당으로 2차 대전 때 폭탄 2개가 떨어졌는데 구멍만 있고 탄피가 매달려 있어 많은 사람들이 보러오고 있다. 근처에 필라(Pilar)성모교회의 필라는 아라곤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BC 40년 에브로강 연안에 있던 성 야곱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의 초석이 되는 기둥(pilar)을 전해준 자리에 세운 교회가 필라 성모교회라고 한다. 이곳에서 기둥은 기적의 증거라고 했다.

사라고사를 떠나 넓은 평야를 지나 250킬로를 달려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한국식당을 찾느라고 시내를 몇 바퀴 도는 바람에 시내의 골목을 많이 보게되었다. 중세에 세운 도시라 골목은 협소하지만 길 중앙에 공원이 있어 아늑하고 삭막하지 않아 좋아 보였다.

바르셀로나는 인구 약 150만의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며 스페인 제1의 산업도시다. 피카소, 달리 등의 화가와 첼로의 거장 카잘스, 성 가족교회(Sagrada Familia)를 설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가우디를 배출한 문화의 중심지다. 8세기에 무어인이 점령했으나 801년에 샤를마뉴(카를大帝)가 지배했다. 12세기에 카탈루냐 백작과 아라곤 여왕의 결혼으로 아라곤 왕국이 되었고 바르셀로나는 그 수도로 번창하여 14세기에 절정기를 맞이했다. 이 무렵에 지어진 고딕 대성당(13세기 말)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축물들이 구 시가 중앙에 많이 남아 있다.

1469년에 아라곤과 카스틸랴의 통일로 지방도시가 되었으나 고유의 카탈루냐 어(語)를 가지고 있고 1550년에 창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카탈루냐 문화에 대한 긍지가 대단하다. 일찍이 스페인 상공업의 중심지역으로 마드리드와 맞서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도 건물을 불태우고 시위를 벌리는 장면을 TV를 통해 목격할 수 있었다.

가우디가 1882년 31세 때부터 설계해서 짓기 시작한 <성 가족 교회>를 방문했다. 20년 전에 왔을 때 보다 많이 건축이 되었다. 성스러운 가족이란 "우리는 형제" 란 뜻이며 가우디는 독실한 카돌릭 신자로 예술적 영감은 자연에서 얻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움은 정형화되지 않았고 자연모습을 살려서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의 형태를 건축에 도입했다.

가우디는 1926년 74세 때 전차에 치여 죽었으며 시신은 성당에 안치되었다. 2082년 완공 예정인데 현재 공정을 앞당겨 2042년 완공을 목표로 건축중이고 직접 작업현장을 돌아보니 컴퓨터작업실을 비롯해 최첨단 장비를 사용해서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가우디는 길거리에 버려진 모자이크 타일을 건축재로 재활용했다고 하니 그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1936년 내전 때 폭격하지 않고 보호했으며 건축비는 입장료와 맥도날드 등의 기업 협찬으로 현재 7천만 명 입장에 수입은 6백억 불이라고 한다.

가우디 성당 뒷면은 성경의 내용과 영원한 삶을 의미하는 초록색 삼나무 위에 하얀 비둘기를 조각했다. 이는 성당에 오는 사람은 하나님 믿기를 기원함이라고 하니 가우디의 신심을 알만해서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오늘날 가우디의 신심이 헛되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보러오고 성스러움을 느끼고 돌아간다. 몇 개의 뾰족한 첩 탑은 천국을 지향해서 높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지하로 내려가니 <가우디 박물관>이 있고 작업실에는 가우디 성당 설계도 모형을 해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추를 매달아서 균형을 잡는 가우디의 구조 공학적 건축방법의 전시실을 보며 건축에 문외한이긴 하지만 감탄이 절로 나왔다. 공중에 천사를 매달아 놓았는데 처음에 시도할 당시 어린아이에 추를 달아서 실시했는데 지금 그 아이가 노인이 되어 살아있다고 했다. 지하 중앙에 가우디 무덤은 사방에서 빛이 들어와 환하게 설계되어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 같았다. 리프트를 타고 90미터 꼭대기에 올라가 바르셀로나 시내를 구경하고 내려 올 때는 한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가파른 층계로 내려왔다.

 다음에는 가우디 작품의 구엘( Parc Guell)공원으로 갔다. 구엘은 예술에 관심 많았던 귀족으로 가난한 가우디의 후원자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버려진 목욕탕 타일을 재활용해 만든 정원에 돌로 된 긴 의자인데 인체 공학적인 설계로 앉은 자세가 더 없이 편안하다. 한참 그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경이의 눈으로 주변을 감상했다. 넓은 마당에 모래를 깔아 비 오면 물이 스며들어 도마뱀을 조각한 입으로 나오게 되어 그 아이디어 감탄했다. 야자수 나무와 석회석과 흙으로 쌓아 만든 구엘의 집과 그 옆에 나비 문, 60여 채의 만남의 광장, 수위실은 동화 <헨델과 그레텔>을 모방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얼른 보아도 동화에 나오는 집을 연상케 한다.

구엘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동화의 나라에 갔다 오는 것 같았다.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이나 가구는 자연 친화적이라 부드럽고 온화하며 자재는 버려진 타일을 재활용해서 경제적이고 재질이 낯설지 않아 친근한 느낌을 주어 좋다. 요즈음 시멘트와 철근으로 지은 아파트와 빌딩을 보다가 가우디의 건물을 보니 건물이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에 두 번 째 바르셀로나 방문을 통해 가우디 건축의 철학을 알 것 만 같아 보람된 여행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1992년 제25회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의 월계관을 썼던 서울의 남산 같이 시민의 휴식처인 몬쥬익 언덕이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언덕 위에 올라가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침 우리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경기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념식을 한 메인 스타디움 건너편 길가에 황영조 선수의 달리는 모습을 조각한 돌과 황 선수의 발자국이 전시되어있어 우리일행은 감격스러웠다. 그곳에 관광객들이 메인 스타디움 보러 많이 오지만 우리는 자랑스러운 황영조 선수의 월계관을 쓴 모습을 보니 한국인으로써의 긍지와 자부심이 그 어느 관광지 보다 살아났다.

내려오면서 몬주익 언덕 중턱에 있는 현대회화의 거장 후안 미로의 미술관에 갔다. 국제적인 건축가 호세루이스가 설계한 단순하고 쾌적한 미술관에 미로의 회화, 판화, 조각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다음에는 피카소 미술관을 찾아갔는데 구 시가 지역으로 길이 아주 협소했다. 피카소가 어려서 살던 집을 개조해서 현대적인 건축감각을 살려 설계한 미술관에는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의 습작까지 전시되어 있어 그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대표작 「게르마니카」와 비슷한 복사 품을 사서 액자를 만들었는데 인쇄기술이 좋아서 진품 못지 않게 복사가 잘되어 때로는 진품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콜럼부스 출항 기념비가 있는 바다 위에 떠있는 거대한 쇼핑 센터와 레저시설, 식당들이 있는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항만 Port Vell에서 우리일행은 점심식사를 했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위로 가니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고 주변해안은 요트로 꽉 차있었는데 요트 세워 놓는 자리 값이 2만불정도나 된다고 했다. 식후에 해변을 산책했는데 아직 봄 날씨가 쌀쌀한데도 7, 80대 노인들이 쌍쌍이 나와서 찬물 속에서 수영도 하고 모래 위에서 배드민턴도 하며 젊은이 못지 않은 활기찬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스페인의 도시를 말할 때 <길바우(북쪽도시)에서 돈벌고, 마드리드에서 정치하고, 바르셀로나에서 문화 향유하고, 세비아에서 논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각도시의 고유한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아름다운 봄의 눈부신 태양과 함께 한 이베리아 반도 횡단과 지브롤타 해협 넘어 북아프리카의 관문인 모로코를 여행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을 통해 이슬람문화와 역사를 알게 되었다. 모로코가 스페인을 점령해서 이슬람문화의 꽃을 피우고 스페인은 이슬람성전 위에 카톨릭 성당을 세운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다. 유럽과 이슬람, 아프리카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서 유럽 문화와 조화를 이룬 이슬람 문화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직접 본 것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간직되기에 현대인들은 앞을 다투어 여행하는 가보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장애인 치료분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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