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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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호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3-11-15 17:12 조회1,530회 댓글193건본문
南美의 악몽, 한국서 개봉박두
-시인 이강원-
남미의 네 나라에서 10년 세월을 보낸 나에게
그곳에 대한 뜨거운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남미를 흉악한 역할 모델( role model)로 비유할때다
우리의 경제기상도에 먹구름이 피어오를 때면 제일 먼저 갖다 맞추는
“이러다가 우리도 남미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 거야!”라는
단순하고 무책임한 비유를 접한다.
그때마다 남의 나라를 좀더 사려 깊게 살펴보고
얘기할 수는 없을까라는 아쉬움과 함께
‘아유, 얼마나 지지리도 못났으면 …’하며
심 한 번 못 펴고 사는 자식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뒤섞여서 가슴이 꽉 막히곤 했다.
이런 내가 이번에는 앞장서서 아픈 비유의 깃발을 높이 들고 싶다
‘이렇게 국가의 등뼈인 중산층이 무너져 내려
절대빈곤 계층 증가의 가속이 붙고
생계 범죄가 늘어난다면 우리는 정말 남미와 쌍벽을 이루는
국가가 될 것이야’ 라고 쓴 휘장을!
누구나 몸 속에 숨어 있는 점 몇 개 가지고 있듯이
빈부의 차는 지구촌 어느 구석이든 존재한다
그러나 중증으로 발전한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사회 기본 질서를 뒤엎고 안전 장치의 마비사태 까지 불러오게 된다
이런 현상은 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가 겪었지만 불과 일년전까지 살았던
아르헨티나에서는 중신층 몰락과 그 무서운 후유증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지금쯤 초여름에 들어선 그곳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보라색 하카란다(Jacaranda) 꽃의 축제가 한창이어서
숨막히는 절경을 연출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거리에는 아이를 안은 채 동전 몇 닢을 위해
자동차 창을 두드려대는 엄마들과
구멍 난 스타킹과 색바랜 옷을 입고 탱고를 추는거리의 댄서들,
쓰레기통 뒤지기 경쟁에 바쁜
걸인들로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 모두 바로 얼마 전까지는 탄탄한 중산층이었다
이미 100년 전에 지하철을 건설했고 불과 30년 전에
국민소득 1만 달러 고지를 목전에 두었던 곳이었건만,
절대 빈곤층 60%를 바라보는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니
어디 굶주림과 싸워 이길 장사가 있겠는가.
세계 3대 오페라 하우스의 하나인 콜론(Colon)극장은
두꺼운 레드 카펫과 가발까지 쓴 완벽한 중세 복장을 한 안내인과
초호화 실내장식이 어우러져 사치와 우아함의 극치를 이룬다.
이 극장에는 100여 년을 지켜온 전통이 있다.
바로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이브닝 드레스 정장차림으로만
입장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철벽 같은 전통도 상대적 박탈감에 떠는
빈자의 분노 앞에서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특정 공격대상으로 자리잡은 강남지역 찌르기와
협박하기를 바라보며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소득분배의 불균형에서 오는 위화감의 병균은 이미
국민 가슴을 파 먹기 시작했다
언제 상영될지 모르는 온갖 악몽의 예고편이 곧 개봉박두를
선언한 상황이다.
그러나 남미도 우리도 이 병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
바로 초장부터 한참 잘못 짜여진 정치판과 허약한 지도력,
이를 적절하게 사용한 노동귀족과 이기주의에 눈먼 국민들이
손에 손잡고 빚어낸 작품이 바로 악몽이다.
함께 균을 배양해서 함께 걸린 이 병은 치료도 함께 해야 한다.
모두 예리하게 칼을 갈아 생살을 도려내듯
각자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는다면 이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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