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의 주인공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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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3-11-09 10:05 조회1,027회 댓글11건본문
아침에 일어나 창 밖에 흰눈 쌓인 높은 산을 보니 봄 속에 겨울이 실감나지 않았다. 우리일행은 떠나기 전에 막 시즌이 끝난 스키장 눈 위를 걸어보았다. 스페인 남부에 펼쳐진 8개 주의 안달루시아 지방 중에 그라나다 가까운 네바다산맥은 양질의 눈으로 쌓여 있어 겨울에는 스키족 들로 붐비고 지중해안은 휴양지로 인기가 높으니 유럽 사람들이 스페인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만 같다.
다시 해발 2500미터인 시에라네바다 산의 풀도 잘 안 자라는 돌뿐인 첩첩산중을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데 때로는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은 곡물과 올리브의 재배가 활발해서 꼬르도바까지 3시간 반 동안 가는데 거의 올리브 밭뿐이다. 꼬르도바 부근은 저지대로 비가 별로 오지 않아서 여름은 타는 듯 뜨겁고 겨울은 따뜻하다. 스페인의 이미지인 찬란한 태양, 정열적인 플라멩고 춤, 집시는 모두 안달루시아의 상징이다.
꼬르도바(Cordoba) 도착하니 길가에 아파트가 줄지어 서있는데 집시를 위해 지어준 시민 아파트다. 시내를 흐르는 강은 멀리 세비야의 과달히비야강이 이곳까지 온 것인데 강 위에 로마인이 세운 다리를 볼 수 있었다. 돌로 된 육중한 다리는 세월의 흐름이 무색할 정도로 견고해 보여 툭하면 다리가 무너지는 광경을 본 우리일행은 로마인의 건축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756~1031년까지 이슬람교 왕국의 수도로 화려한 아랍문화가 꽃핀 곳이다. 현재는 공업도시이며 주변은 밀, 올리브, 포도 등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시내에 유대인 거리는 이슬람 인이 지어주었는데 집안 정원에는 분수가 있어 시원하게 설계되었다.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 (Mezquita)는 유대교회를 사원으로 같이 사용하던 이슬람교에서 785년 교회를 매입해 788년에 세우고 계속 증·개축을 하여 마침내 987년에 현재와 같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에 하나인 이슬람 사원이 완성되었다. 2만 여명이 예배드릴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이슬람의 무데하르 양식의 조각을 한 8개의 문이 있는데 <용서의 문>으로 들어가면 <오렌지의 안뜰>이 있으며, 그 오렌지나 종려나무를 바라보며 걸으면 <종려의 문>에 도달한다. 내부는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만들은 수백 개에 달하는 둥근 기둥이 있으며 그 위를 굵고 붉은 줄무늬의 아치로 장식해 그곳을 통과하는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 중에 빨간 대리석은 그라나다 산이고 검은색은 꼬르도바 산이라고 했다.
1236년 카톨릭교도가 집권하면서 사원 내부에 카톨릭 예배당이 생기고 본래의 이슬람 양식에 변화를 가져 왔다. 16세기에 까를로스 5세가 르네상스양식의 예배당과 종 탑을 이 사원의 중앙 부분에 끼워 넣었기 때문에 카톨릭과 이슬람교가 동거하는 특수한 분위기의 건물이 되었다. 카톨릭과 이슬람의 공존이 아름다운조화를 이루어 기독교가 추구하는 사랑과 용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슬람 사원 안에는 카톨릭에서 베드로성당을 복사해 설계한 내부는 십자가형태와 고딕양식인데 은 120킬로로 4복음서를 상징하는 소(누가), 독수리(요한), 사자(마태), 천사(마가)의 조각이 있다. 64미터의 종 탑 꼭대기에는 성 라파엘 동상이 우뚝 서있어 성당의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 그 사원은 8세기에 로마가 창건할 때 로마의 돔 식으로 지었고 천장은 9세기에 이슬람이 만들고 바닥은 흙이었는데 스페인왕국이 15세기에 대리석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겉은 이슬람사원에 내부와 종 탑은 카톨릭 교회인 셈이다.
현재 성당에서는 매일 일요일 아침 9시 반에 미사가 있고, 109석이 있는 성가대 실에는 이슬람의 상징적인 조각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슬람 사원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또 근처에 필라(pilar)사원이 있는데 전쟁 때 폭탄이 성당에 3발 떨어졌는데 폭파되지 않아 지금도 기둥에 떨어진 폭탄을 기념으로 보관해 놓았다. 기적 성당이라고도 부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적의 현장을 보러 온다고 했다.
꼬르도바에는 8, 9, 10세기에 걸쳐 세워진 아라비아건축 양식의 성벽과 성곽 그리고 14세기의 무데하르 양식에 아라비아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궁전들, 귀족의 저택 등 많은 유적이 있어 아라비아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곡창 지대로 올리브의 집산지인 꼬르도바에서 우리일행은 올리브와 올리브 기름, 꿀 그리고 치즈를 샀다.
마드리드를 향해가다가 210킬로 지점에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 방황하던 라만차(La Manza) 지역이 시작하면서 넓은 들에 풍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반가운지, 마치 내가 소설의 주인공을 만난 것 같았다. 셰익스피어와 동시대를 살은 세르반테스는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했지만 현재는 스페인이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는 돈키호테가 활동하던 풍차가 있는 들판을 열심히 바라보고 또 보며 4백 년 전에 쓴 작품이 지금도 재미있으니 명작이란 시공간을 초월하는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쓴 목적을 “기사도 이야기가 세상에서 갖는 권세와 명성을 타도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니 <돈키호테>는 '소설 속에 담긴 선(善)에서 구현을 갈망하는 진실과 넘치는 해학으로 인류역사의 영원한 정신적인 보물로 간직될 것이다'라고 하며 명작 소설 중에 최고라고 평하는 월드뉴스를 듣고 더욱 반가웠다.
저녁 늦게 마드리드에 도착해 한국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동네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들려서 알아보니 그 시간에 레알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가 축구시합 중이었다. 결과는 일대일 무승부이었다. TV뉴스에서는 카탈로니아 지역(바로셀로나)에서 데모와 방화 사건으로 어수선했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의 관계가 물과 기름처럼 융화 할 수 없음을 현장에서 확인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서울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스페인을 이겼을 때 스페인 열도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장애인 치료분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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