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립과 풍차의 도시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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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4-02-27 19:46 조회1,170회 댓글9건본문
브뤼셀에서 기차로 암스테르담까지 5시간이 걸렸다. 풍차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인형의 집처럼 예쁜 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바다보다 낮은 땅에 뚝을 쌓아 만든 곳이라는 것이 그냥 보아 믿어지지 않았다. 우선 중앙 역 근처 호텔에 투숙했는데 암스테르담에는 도둑이 많으니 돈 조심하라고 주인이 일러주었다.
역 앞에는 부채 모양의 운하가 펼쳐져 있다. 운하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물이 아주 더러웠다. 좁은 길에는 반드시 자전거 길이 있고 자동차 보다 자전거를 많이 타서 공기의 오염이 덜하다. 비록 물은 더러우나 운하와 고풍스런 건물들과 가로수와 가로등이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 방문한 곳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 미술관으로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었다. 1973년에 개관한 하얀색 고흐 미술관은 현대적인 건축물로 암스테르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그것은 화가 고흐의 명성 때문이다. 1층에는 1887~1888년까지의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한 1880년부터 1890년 죽기까지의 작품이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3층에는 데생, 4층에는 고갱의 작품과 더불어 고흐의 작품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고흐는 생전에 가난하고 불행했지만 이곳에 와보니 'Life is short, art is long.'을 실감했다.
다음에는 시내에 있는 렘브란트 미술관을 방문했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거장 렘브란트가 1639년부터 1658년까지 머물렀던 집이다. 1911년부터 미술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집 앞에는 운하가 흐르고 1층에는 세계 최초로 사용한 동판화 기구가 전시되었으며 주로 성경을 주제로 한 종교화, 자화상 등이 많고 렘브란트 자신이 인쇄한 250장의 오리지널 에칭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더불어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으나 고흐와 같은 미술관이 아닌 그가 살던 집이다.
다음은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집을 구경했다. 독일 태생의 유태인인 안네 프랑크가 독일 점령하의 암스테르담에서 쓴 <안네의 일기>는 그녀와 가족들이 독일 병사에게 연행되기 3일 전인, 1944년 8월 1일까지 쓴 것이다. 가족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에 의해 1947년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어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애독자가 많다.
안네가 숨어있었던 건물은 1635년에 세운 상점으로, 프린센(Prinsen) 운하근처에 있다. 사무실이 있는 앞 건물과 안네가 숨어 있던 뒤 건물은 회전식 책장으로 위장되어 있으며, 안네가 일기를 썼던 다락방도 그대로 있다. 앞 건물은 현재 나치의 잔혹상을 보여 주는 자료관으로 이용되고 있고, 관광객들이 많아 차례로 줄을 서서 좁은 통로를 따라 안네가 일기에 쓴 대로 다락방까지 가 보았다. 1942-1944년 8월1일까지 안네가 가슴 조이며 숨어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슬픈 표정을 지었다.
끝으로 다이아몬드 가공 공장을 방문해서 다이아몬드를 직접 가공하는 것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육안으로는 어렵지만 현미경으로 보며 형태, 크기 등의 구별과 그에 따르는 가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었다. 돌아 올 때는 이준 열사가 자결한 헤이그를 지나왔다. 어디서나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는 볼 수 있었는데 튤립 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4월이 지나 보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를 관광했다. 인구 38만 명의 아주 작은 나라이며 천년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룩셈부르크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에 둘러싸여 유럽 지도를 자세히 보아야만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역사상 여러 유럽나라들의 침략을 많이 받았으나 깊은 계곡과 절벽으로 둘러 쌓인 도시는 유럽 최강의 요새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한때는 영토가 넓은 적도 있었지만 1867년에 중립국이 되면서 평화를 찾았고 1948년 중립을 포기하고 1948년에 NATO와 EU에 가입했으며 한국 전쟁 때 파병도 한 우리의 우방이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보니 한눈에 신시가지와 구 시가지가 보인다. 평지가 아닌 자연그대로의 골짜기 사이에 자리잡은 도시이며 아름다운 계곡과 신. 구 시가를 고가다리로 연결해 중세의 성벽들과 현대적인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다. 전원적이면서도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어 인상적이었다.
노인복지가 잘 되어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3층으로 된 벽돌집은 가정 같은 분위기이었고 노인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노인들의 노후를 국가가 편안하게 책임져 주는 것이 부러웠다. 비록 우리나라의 한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노인 복지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역 앞에는 부채 모양의 운하가 펼쳐져 있다. 운하의 도시인 암스테르담의 운하는 물이 아주 더러웠다. 좁은 길에는 반드시 자전거 길이 있고 자동차 보다 자전거를 많이 타서 공기의 오염이 덜하다. 비록 물은 더러우나 운하와 고풍스런 건물들과 가로수와 가로등이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처음 방문한 곳은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 미술관으로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었다. 1973년에 개관한 하얀색 고흐 미술관은 현대적인 건축물로 암스테르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명소가 되고 있다. 그것은 화가 고흐의 명성 때문이다. 1층에는 1887~1888년까지의 그의 대표작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본격적인 화가 생활을 시작한 1880년부터 1890년 죽기까지의 작품이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3층에는 데생, 4층에는 고갱의 작품과 더불어 고흐의 작품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다. 고흐는 생전에 가난하고 불행했지만 이곳에 와보니 'Life is short, art is long.'을 실감했다.
다음에는 시내에 있는 렘브란트 미술관을 방문했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거장 렘브란트가 1639년부터 1658년까지 머물렀던 집이다. 1911년부터 미술관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집 앞에는 운하가 흐르고 1층에는 세계 최초로 사용한 동판화 기구가 전시되었으며 주로 성경을 주제로 한 종교화, 자화상 등이 많고 렘브란트 자신이 인쇄한 250장의 오리지널 에칭을 소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최고의 화가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더불어 17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화가라는 명성을 얻었으나 고흐와 같은 미술관이 아닌 그가 살던 집이다.
다음은 안네 프랑크가 살았던 집을 구경했다. 독일 태생의 유태인인 안네 프랑크가 독일 점령하의 암스테르담에서 쓴 <안네의 일기>는 그녀와 가족들이 독일 병사에게 연행되기 3일 전인, 1944년 8월 1일까지 쓴 것이다. 가족 중의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에 의해 1947년 네덜란드어로 출판되어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애독자가 많다.
안네가 숨어있었던 건물은 1635년에 세운 상점으로, 프린센(Prinsen) 운하근처에 있다. 사무실이 있는 앞 건물과 안네가 숨어 있던 뒤 건물은 회전식 책장으로 위장되어 있으며, 안네가 일기를 썼던 다락방도 그대로 있다. 앞 건물은 현재 나치의 잔혹상을 보여 주는 자료관으로 이용되고 있고, 관광객들이 많아 차례로 줄을 서서 좁은 통로를 따라 안네가 일기에 쓴 대로 다락방까지 가 보았다. 1942-1944년 8월1일까지 안네가 가슴 조이며 숨어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안네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슬픈 표정을 지었다.
끝으로 다이아몬드 가공 공장을 방문해서 다이아몬드를 직접 가공하는 것을 보고 설명을 들었다. 육안으로는 어렵지만 현미경으로 보며 형태, 크기 등의 구별과 그에 따르는 가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었다. 돌아 올 때는 이준 열사가 자결한 헤이그를 지나왔다. 어디서나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는 볼 수 있었는데 튤립 꽃으로 장관을 이루는 4월이 지나 보지 못 한 것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를 관광했다. 인구 38만 명의 아주 작은 나라이며 천년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룩셈부르크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에 둘러싸여 유럽 지도를 자세히 보아야만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역사상 여러 유럽나라들의 침략을 많이 받았으나 깊은 계곡과 절벽으로 둘러 쌓인 도시는 유럽 최강의 요새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한때는 영토가 넓은 적도 있었지만 1867년에 중립국이 되면서 평화를 찾았고 1948년 중립을 포기하고 1948년에 NATO와 EU에 가입했으며 한국 전쟁 때 파병도 한 우리의 우방이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보니 한눈에 신시가지와 구 시가지가 보인다. 평지가 아닌 자연그대로의 골짜기 사이에 자리잡은 도시이며 아름다운 계곡과 신. 구 시가를 고가다리로 연결해 중세의 성벽들과 현대적인 빌딩이 공존하는 도시다. 전원적이면서도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어 인상적이었다.
노인복지가 잘 되어있다고 해서 방문했다. 3층으로 된 벽돌집은 가정 같은 분위기이었고 노인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노인들의 노후를 국가가 편안하게 책임져 주는 것이 부러웠다. 비록 우리나라의 한도에 불과한 작은 나라이지만 노인 복지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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