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나라 같은 노르웨이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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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4-02-05 12:50 조회1,269회 댓글106건본문
오슬로 역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 걸려 베르겐에 도착했다. 5월말인데도 날씨가 흐리더니 계속 눈이 내리는데 주먹만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북구에서 보는 눈은 느낌이 달랐다. 보이는 것은 울창한 숲뿐이고 인가나 도시는 가끔 보였다. 갈수록 눈이 쏟아 붓는데 기차는 잘도 달렸다. 알고 보니 눈이 많은 곳이라 철로에 지붕이 있어서 눈이 많이 와도 기차가 통행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키를 좋아하는 나는 눈이 부럽기만 했다.
밤이 빨리 왔다. 밤이 되니 눈 쌓인 숲 속에서 요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철도역 주변은 눈이 1미터 이상 쌓이고 기차길만 뚫려서 마치 눈으로 된 터널 속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밤 10시에 베르겐에 도착했다. 눈 때문에 좀 지연되었다. 밤에 보아도 베르겐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리는 고풍스런 호텔에 들었다. 나무로 된 육중한 문과 두터운 커텐, 사우나시설이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고 12~13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다. 마침 그리그 기념 음악 홀에서 국제 음악축제가 있는 때라 관광객들로 도시는 생기가 있어 보였다.
다음날 오전에 부두에서 배타고 빙하가 봄이 되면 녹아 내려서 생긴 피요르 해안관광을 떠났다. 산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피오르드는 노르웨이 관광의 하이라이트이다. 우리가 탄 배 이름은 "화이트레이디"호다. 베르겐은 항구인데 배를 타고 피요르 해안으로 가면서 시내를 볼 수 있었다. 해안 언덕 위에 멋진 현대적인 집들이 있는가 하면 10세기 전부터 형성된 운치 있는 중세의 도시 분위기가 어울려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우리가 탄 배가 베르겐을 벗어나면서 양쪽에는 바위로 된 높은 산들만 보이고 빙하로 덮여 있던 산 위에서는 봄이 되니까 빙하가 녹아서 폭포수처럼 바다로 흘러 내렸다. 길고 복잡한 해안선과 곧게 떨어지는 긴 폭포가 출렁이는 푸른 피요르 해안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서 선상에 관광객들은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4시간 동안의 피요르 관광은 다양한 해안의 절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내고 오후에는 시내관광을 했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 에드워드 그리그가 살던 집을 관광했다. 원래 그리그는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인인데 사업상 베르겐에 왔다가 노르웨이에 이민 온 후손이다. 그리그는 몸이 약해서 한적한 해변 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작곡을 했다. 베르겐에서 태어난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가 그의 나이 39세 때 이사와 1907년 64세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그가 이 곳으로 올 당시에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과 <페르 귄트> 등이 발표되어 명성을 얻었을 때였으며, 조용히 안정과 휴식이 필요했던 그리그에게 이 곳은 최상의 안식처이었다.
내부에는 그가 사용했던 피아노를 비롯해 악보, 편지, 초상화와 가구 등이 진열되어 있다. 그 유명한「쏠베지의 노래」를 작곡한 곳은 고독한 해안의 오두막집이었다. 잔잔한 바닷가 오두막집에서 나무로 만든 잔에 맥주를 마시며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자연적인 미를 좋아해 집도 칠을 하지 않았다. 생전에 사람들과 우정의 표시로 백조모양의 나무 그릇에 맥주 마시기를 좋아했었던 것을 기념해서 전시해 놓았다.
그리그는 덴마크에 살던 외사촌 니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결국 결혼해서 이 오두막집에서 행복하게 살며 작곡활동을 했다. 그리그와 니나의 무덤은 그의 유언에 따라 오두막집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는 암벽을 뚫어서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부부의 무덤이 있는 암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파도소리에 실려 그리그의 격정적인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마동안 머물러있고 싶었다.
다음은 베르겐항 어시장 옆 브뤼겐 거리에 있는 한자 박물관에서 해외 무역과 어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베르겐이 14세기에 한자 동맹에 가입해서 당시 한자 상인들의 활약상과 생활 등에 관한 자료를 구경하고, 브뤼겐 거리에 있는 한자 동맹 당시 독일 상인들이 살던 목조가옥 18채와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 옆의 마리아 교회(Mariakirken)는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4개의 사각 탑이 특이하다. 1150년에 건축 한 850년도 넘은 나무로 지은 교회는 지금도 일요일 아침 8시에 예배를 본다고 하는데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해 보이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인형의 집> 작가 입센의 기념관을 방문했다. 입센이 살던 동네는 북 구라파 풍의 집들이 모여 있어 동화에 나오는 분위기가 풍겼다. 입센이 살았던 모습을 보며 주인공 노라가 왜 집을 나와야만 했는가 생각하게 했다.
끝으로 정상까지 운행하는 등산열차를 타고 바라본 베르겐 시내 전경은 구라파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게 나의 영상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쏠베지의 노래가 있어 더욱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는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장애인 치료분야 유학)
밤이 빨리 왔다. 밤이 되니 눈 쌓인 숲 속에서 요정이 나올 것만 같았다. 철도역 주변은 눈이 1미터 이상 쌓이고 기차길만 뚫려서 마치 눈으로 된 터널 속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밤 10시에 베르겐에 도착했다. 눈 때문에 좀 지연되었다. 밤에 보아도 베르겐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우리는 고풍스런 호텔에 들었다. 나무로 된 육중한 문과 두터운 커텐, 사우나시설이 있어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고 12~13세기에는 노르웨이의 수도였다. 마침 그리그 기념 음악 홀에서 국제 음악축제가 있는 때라 관광객들로 도시는 생기가 있어 보였다.
다음날 오전에 부두에서 배타고 빙하가 봄이 되면 녹아 내려서 생긴 피요르 해안관광을 떠났다. 산과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피오르드는 노르웨이 관광의 하이라이트이다. 우리가 탄 배 이름은 "화이트레이디"호다. 베르겐은 항구인데 배를 타고 피요르 해안으로 가면서 시내를 볼 수 있었다. 해안 언덕 위에 멋진 현대적인 집들이 있는가 하면 10세기 전부터 형성된 운치 있는 중세의 도시 분위기가 어울려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우리가 탄 배가 베르겐을 벗어나면서 양쪽에는 바위로 된 높은 산들만 보이고 빙하로 덮여 있던 산 위에서는 봄이 되니까 빙하가 녹아서 폭포수처럼 바다로 흘러 내렸다. 길고 복잡한 해안선과 곧게 떨어지는 긴 폭포가 출렁이는 푸른 피요르 해안과 멋진 조화를 이루어서 선상에 관광객들은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4시간 동안의 피요르 관광은 다양한 해안의 절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내고 오후에는 시내관광을 했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 에드워드 그리그가 살던 집을 관광했다. 원래 그리그는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인인데 사업상 베르겐에 왔다가 노르웨이에 이민 온 후손이다. 그리그는 몸이 약해서 한적한 해변 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면서 작곡을 했다. 베르겐에서 태어난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가 그의 나이 39세 때 이사와 1907년 64세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그가 이 곳으로 올 당시에는 이미 <피아노 협주곡>과 <페르 귄트> 등이 발표되어 명성을 얻었을 때였으며, 조용히 안정과 휴식이 필요했던 그리그에게 이 곳은 최상의 안식처이었다.
내부에는 그가 사용했던 피아노를 비롯해 악보, 편지, 초상화와 가구 등이 진열되어 있다. 그 유명한「쏠베지의 노래」를 작곡한 곳은 고독한 해안의 오두막집이었다. 잔잔한 바닷가 오두막집에서 나무로 만든 잔에 맥주를 마시며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자연적인 미를 좋아해 집도 칠을 하지 않았다. 생전에 사람들과 우정의 표시로 백조모양의 나무 그릇에 맥주 마시기를 좋아했었던 것을 기념해서 전시해 놓았다.
그리그는 덴마크에 살던 외사촌 니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결국 결혼해서 이 오두막집에서 행복하게 살며 작곡활동을 했다. 그리그와 니나의 무덤은 그의 유언에 따라 오두막집에서 멀지 않은 바닷가에 있는 암벽을 뚫어서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언제나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부부의 무덤이 있는 암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파도소리에 실려 그리그의 격정적인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얼마동안 머물러있고 싶었다.
다음은 베르겐항 어시장 옆 브뤼겐 거리에 있는 한자 박물관에서 해외 무역과 어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베르겐이 14세기에 한자 동맹에 가입해서 당시 한자 상인들의 활약상과 생활 등에 관한 자료를 구경하고, 브뤼겐 거리에 있는 한자 동맹 당시 독일 상인들이 살던 목조가옥 18채와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 옆의 마리아 교회(Mariakirken)는 베르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4개의 사각 탑이 특이하다. 1150년에 건축 한 850년도 넘은 나무로 지은 교회는 지금도 일요일 아침 8시에 예배를 본다고 하는데 얼마나 견고하고 튼튼해 보이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은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인형의 집> 작가 입센의 기념관을 방문했다. 입센이 살던 동네는 북 구라파 풍의 집들이 모여 있어 동화에 나오는 분위기가 풍겼다. 입센이 살았던 모습을 보며 주인공 노라가 왜 집을 나와야만 했는가 생각하게 했다.
끝으로 정상까지 운행하는 등산열차를 타고 바라본 베르겐 시내 전경은 구라파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게 나의 영상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그곳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과 쏠베지의 노래가 있어 더욱 뇌리에서 살아지지 않는다.
이종희 (여행 칼럼니스트, 프랑스 파리에서 장애인 치료분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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