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 기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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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층 미술관에 명품은 피카소의 ‘부채를 든 여인', '개를 몰고 가는 소년’과 내가 좋아하는 색체의 마술사라 부르는 야수파의 창시자 앙리 마티스(1869∼1954)의 유채화 '붉은 탁자'와 '춤'을 비롯해 고흐의 그림들도 많은데 고흐의 특이한 묘사는 그가 시각장애 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르미타주의 대표 적인 작품은 16세기에 세계 최초의 동판화가 렘브란트의 그림이라고 했다. 20년 전 암스텔담을 관광하며 렘브란트 생가 박물관과 고흐 기념미술관을 보았는데 러시아에서 귀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샤갈, 칸딘스키 작품들은 니스의 샤갈미술관과 프랑크푸르트의 현대미술관에 더 많이 전시된 작품들을 본적이 있다. 미술작품 수집에 광적이었던 독일 출신의 예카테리나 2세 여왕이 죽은 다음에 보니 파리에서 구입한 옷 만해도 만 벌이나 되었고 그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에르미타주 궁전 앞 네바 강 가에는 스웨덴과의 전쟁 후에 만든 화강암으로 된 페트로파블스키 요새가 있고 그곳 감옥에 한때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갇혀 있었다. 네바 강은 수심도 깊고 물도 많고 바다 같이 보였다. 그곳에서 다리를 건너 궁전 건너편에 있는 볼셰비키 혁명의 신호탄을 발사한 순양함 오로라 호에 올라갔다. 조금 전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가 잡혀간 침실을 보았는데 그 궁정을 향해 발포했던 배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해양박물관으로 운영중이다. 그곳에서 좀 가니 길게 쌓은 담 밖에 탱크와 무기들을 길게 줄지어 전시하고 있는 전쟁박물관이 보였다. 냉전시대가 연상되었다.
1825년 12월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한 청년 귀족들이 혁명을 시도했던 원로원 광장에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삭성당이 있다. 높이가 백 미터도 넘는 112개의 화강암 기둥위에 백 톤이 넘는 금으로 장식한 빛나는 돔이 우뚝 솟아 제정러시아의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교회의 위용을 나타낸다. 근처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인 피터대제의 청동기마상은 집채만 한 거대한 바위위에 뒷다리로는 악의 상징인 큰 뱀을 밟고 있고 앞다리는 높이 들고 있어 황제의 대북방전쟁의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
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제일 넓고 유서 깊은 네프스키 대로변에 있는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는 카잔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일행 중의 한사람에게 소매치기가 접근해서 큰일 날 뻔 했다. 지금은 종교사 박물관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과 규모는 작지만 흡사했다. 실제로 베드로 성당을 모방하여 건축되었다는 러시아 고전주의 양식 의 사원이다. 1811년 건조된 건물은 코린트식의 144개의 기둥이 있는 반원형의 회랑을 갖고 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쿠투조프장군의 동상이 성당입구에 있고 전시케이스에는 나폴레옹 군의 전시품도 전시되어 있다. 중앙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 토요일과 일요일 대 제일에는 예배를 하고 있다. 이 사원에는 이콘 '카잔 성모대상'이 있으나 진품이 아니며 기적의 이콘으로 알려진 ‘카잔 성모대상’은 볼가 강변의 카잔에서 1579년 꿈에서 알려준 것으로 9세의 소녀가 발견하였다. 1612년 폴란드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모스크바에 있었으나 1811년 성당 건립직후에 옮겨왔다. 발견한 날과 모스크바 해방 일에 성모 카잔제가 행해진다. 19세기 말경부터 혁명까지 성당 앞은 학생들의 집회 장소였으나 지금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카잔 성당의 맞은편에는 전통적인 러시아 건축양식 중 하나인 모자이크 프레스코로 장식된 모스크바의 바실리성당을 닮은 <그리스도 부활 교회>가 우뚝 서 있다. 알렉산더 2세 암살 기도가 있었던 장소에 1883-1907년에 걸쳐 세워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피의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알렉산더 2세가 상처를 입었던 정확한 위치가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자이크 장식으로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4개의 현관입구 모자이크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칙형’ ‘십자가를 벗는 예수’ ‘성림강림’등 예수부활의 성경내용이다. 러시아의 모자이크는 11세기부터 고대 러시아사원의 장식으로부터 시작된 건축예술이다.
한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한다. 이번 러시아여행을 통해 러시아 정교회와 이콘(성상화), 화려한 모자이크 프레스코 건축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노프 왕가에 대한 이해가 좀되었다. 나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인만이 아닌 세계인의 사랑 받는 도시라는 것을 많은 관광객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사회주의로 인해 낙후되었던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제2의 피터대제를 꿈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푸틴대통령에게 거는 인기 또한 대단한 것을 알았다..
에르미타주 궁전 앞 네바 강 가에는 스웨덴과의 전쟁 후에 만든 화강암으로 된 페트로파블스키 요새가 있고 그곳 감옥에 한때는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갇혀 있었다. 네바 강은 수심도 깊고 물도 많고 바다 같이 보였다. 그곳에서 다리를 건너 궁전 건너편에 있는 볼셰비키 혁명의 신호탄을 발사한 순양함 오로라 호에 올라갔다. 조금 전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가 잡혀간 침실을 보았는데 그 궁정을 향해 발포했던 배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해양박물관으로 운영중이다. 그곳에서 좀 가니 길게 쌓은 담 밖에 탱크와 무기들을 길게 줄지어 전시하고 있는 전쟁박물관이 보였다. 냉전시대가 연상되었다.
1825년 12월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한 청년 귀족들이 혁명을 시도했던 원로원 광장에는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삭성당이 있다. 높이가 백 미터도 넘는 112개의 화강암 기둥위에 백 톤이 넘는 금으로 장식한 빛나는 돔이 우뚝 솟아 제정러시아의 강력한 권력을 지녔던 교회의 위용을 나타낸다. 근처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인 피터대제의 청동기마상은 집채만 한 거대한 바위위에 뒷다리로는 악의 상징인 큰 뱀을 밟고 있고 앞다리는 높이 들고 있어 황제의 대북방전쟁의 승리를 나타내고 있다.
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제일 넓고 유서 깊은 네프스키 대로변에 있는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는 카잔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가는데 일행 중의 한사람에게 소매치기가 접근해서 큰일 날 뻔 했다. 지금은 종교사 박물관으로 로마의 성 베드로 사원과 규모는 작지만 흡사했다. 실제로 베드로 성당을 모방하여 건축되었다는 러시아 고전주의 양식 의 사원이다. 1811년 건조된 건물은 코린트식의 144개의 기둥이 있는 반원형의 회랑을 갖고 있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쿠투조프장군의 동상이 성당입구에 있고 전시케이스에는 나폴레옹 군의 전시품도 전시되어 있다. 중앙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 토요일과 일요일 대 제일에는 예배를 하고 있다. 이 사원에는 이콘 '카잔 성모대상'이 있으나 진품이 아니며 기적의 이콘으로 알려진 ‘카잔 성모대상’은 볼가 강변의 카잔에서 1579년 꿈에서 알려준 것으로 9세의 소녀가 발견하였다. 1612년 폴란드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모스크바에 있었으나 1811년 성당 건립직후에 옮겨왔다. 발견한 날과 모스크바 해방 일에 성모 카잔제가 행해진다. 19세기 말경부터 혁명까지 성당 앞은 학생들의 집회 장소였으나 지금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카잔 성당의 맞은편에는 전통적인 러시아 건축양식 중 하나인 모자이크 프레스코로 장식된 모스크바의 바실리성당을 닮은 <그리스도 부활 교회>가 우뚝 서 있다. 알렉산더 2세 암살 기도가 있었던 장소에 1883-1907년에 걸쳐 세워졌기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피의 사원"이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내부에는 알렉산더 2세가 상처를 입었던 정확한 위치가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모자이크 장식으로 화려해서 눈길을 끈다. 4개의 현관입구 모자이크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채칙형’ ‘십자가를 벗는 예수’ ‘성림강림’등 예수부활의 성경내용이다. 러시아의 모자이크는 11세기부터 고대 러시아사원의 장식으로부터 시작된 건축예술이다.
한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한다. 이번 러시아여행을 통해 러시아 정교회와 이콘(성상화), 화려한 모자이크 프레스코 건축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로마노프 왕가에 대한 이해가 좀되었다. 나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인만이 아닌 세계인의 사랑 받는 도시라는 것을 많은 관광객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사회주의로 인해 낙후되었던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제2의 피터대제를 꿈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푸틴대통령에게 거는 인기 또한 대단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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