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 기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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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희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 작성일2004-08-05 19:00 조회1,112회 댓글12건본문
모스크바에서 밤 1시에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 10시에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대마도 가는 거리다. 보이는 것은 자작나무숲과 대초원으로 창밖에 풍경을 볼 수 있어 러시아를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탄 기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에 모스크바 역이 종점이다. 러시아의 종착역은 기차가 출발한 도시의 이름을 붙인다. 모스크바 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페테르부르크는 대부분이 18-19세기의 바로크양식 건축물로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적 도시라서 내부만 수리하고 외부는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서구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로마노프 왕조의 피터(Peter) 대제에 의해 1703년 수도로 지정 되어 2백 여 년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길 양편에 즐비해 있는 모습이 모스크바를 능가한다. 피터대제는 프랑스를 직접 방문하고 네바 강 하류에 위치한 늪지대에 북방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운하도시를 건설했다. 늪지대라 지반이 약해 5-6층만 지었는데 1층은 조금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대한 건축 재료인 돌은 국민들이 세금대신 우랄산맥에서 강제로 운반해오게 한 것이다. 도시건설을 처음 할 때는 41개의 섬이었는데 지금은 101개의 섬에 성당이 육백 개나 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질 때 까지 2백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피터대제는 교회제도(church patriarchy)를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회의(holy synod)로 세속화 시켰으나 자신의 이름(Peter)과 도시의 이름(St. Petersburg)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름에서 따왔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아들조차 의심해서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많이 지었고 프랑스의 루이왕조, 오스트리아의 왕조에 이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처음간곳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사실 파리의 루블과 런던의 대영 박물관을 20년 전에 방문했었고 이곳을 보기위해 러시아를 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한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1729-96) 여왕은 광적인 미술품 수집가이었으며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건립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미술품을 사들여 에르미타주(프랑스어로 은둔자의 집)에 감춰 두고 남몰래 혼자 감상하며 즐겼다. 현재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에르미타주 건물로 구성되었고 전체 전시실을 이으면 27킬로미터나 되며 100여개의 전시실에 2백 5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전문 관광 프로그램이 조직될 정도이다
네바 강가에 위치한 겨울 궁정이라 일컫는 에르미타주박물관 입구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었다. 그런데 우리일행은 미리 준비된 통로로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18세기 프랑스 바로크양식으로 모두 대리석의 원통기둥이며 웅장한 입구 통로를 지나 화려한 대사 계단 일명 요르단 계단을 올라가 처음 본 것은 18세기에 프랑스가 제작한 황제대관식용 <황금마차>이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로마노프 황제의 방들을 둘러보았다. 복도에 피터대제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피터황제의 방>을 지나 <예카테리나 2세여왕의 방>이 있고 다음은 그녀의 손자 <알렉산드르 1세의 방>인데 로마노프왕가는 이때부터 유럽의 변방에서 탈출했고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받았으나 승리했다. 파리 센 강에 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아름다운 알렉산더 다리는 그가 프랑스와 불가침조약으로 선물한 다리다. 내가 파리에 유학하면서 다니던 샹젤리제 한국교회가 그 다리 근처에 있어서 즐겨 걸었는데 그가 살았던 궁전과 방을 구경하면서 당시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하얀 식탁 방>인데 그곳에는 그가 혁명군에 의해 체포 되었던 새벽 2시 10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옛 모습 대로 있어 로마노프왕조의 몰락의 현장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았다. 다음에 <공작내외의 방>은 네바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위치에 준보석인 녹색 공작석으로 만든 녹색 기둥이 그 어느 방보다 화려하다. 그 옆에 아기자기한 장식의 <로코코 방> 다음에 카펫의 일종인 벽걸이 장식의 <타피스리 방>은 무려 천년을 보존한 귀한 작품이 있다. 변색이 안 된 것은 색깔을 입힌 유리가루로 제작했고 빛을 반 간접적으로 받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계방>은 100-150년 된 다양한 시계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예카테리나 2세여왕의 쉬는 방>은 비밀의 방으로 남성편력에 이용하던 방이라고 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황금의 방>은 조개껍질위에 상아를 입혀 만든 다양한 카메오와 벽난로위에 변질하기 쉬운 유화대신 유화를 방불케 하는 돌 모자이크화가 인상적이다. 끝으로 <유아놀이방>에 있는 비밀의 책상은 열쇄 대신 순서대로 열도록 설계 되어 황실에서 감춰둔 보물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방들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복도에 우리나라 김흥수 화백의 <춤추는 여인>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마침 러시아 여행가기 직전에 서울에서 작품전이 있어 보고 갔는데 똑같은 그림이 그곳에도 있었다. 화가자신은 진품이 아니라고 한다는데 일단 세계적인 미술관에 비록 복도지만 걸려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서구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로마노프 왕조의 피터(Peter) 대제에 의해 1703년 수도로 지정 되어 2백 여 년 동안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 길 양편에 즐비해 있는 모습이 모스크바를 능가한다. 피터대제는 프랑스를 직접 방문하고 네바 강 하류에 위치한 늪지대에 북방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운하도시를 건설했다. 늪지대라 지반이 약해 5-6층만 지었는데 1층은 조금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대한 건축 재료인 돌은 국민들이 세금대신 우랄산맥에서 강제로 운반해오게 한 것이다. 도시건설을 처음 할 때는 41개의 섬이었는데 지금은 101개의 섬에 성당이 육백 개나 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질 때 까지 2백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피터대제는 교회제도(church patriarchy)를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회의(holy synod)로 세속화 시켰으나 자신의 이름(Peter)과 도시의 이름(St. Petersburg)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름에서 따왔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아들조차 의심해서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많이 지었고 프랑스의 루이왕조, 오스트리아의 왕조에 이어 유럽에서 손꼽히는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처음간곳은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사실 파리의 루블과 런던의 대영 박물관을 20년 전에 방문했었고 이곳을 보기위해 러시아를 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본격적으로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한 18세기 예카테리나 2세(1729-96) 여왕은 광적인 미술품 수집가이었으며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건립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미술품을 사들여 에르미타주(프랑스어로 은둔자의 집)에 감춰 두고 남몰래 혼자 감상하며 즐겼다. 현재 에르미타주 미술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에르미타주 건물로 구성되었고 전체 전시실을 이으면 27킬로미터나 되며 100여개의 전시실에 2백 50만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전문 관광 프로그램이 조직될 정도이다
네바 강가에 위치한 겨울 궁정이라 일컫는 에르미타주박물관 입구는 관광객들로 초만원이었다. 그런데 우리일행은 미리 준비된 통로로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18세기 프랑스 바로크양식으로 모두 대리석의 원통기둥이며 웅장한 입구 통로를 지나 화려한 대사 계단 일명 요르단 계단을 올라가 처음 본 것은 18세기에 프랑스가 제작한 황제대관식용 <황금마차>이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로마노프 황제의 방들을 둘러보았다. 복도에 피터대제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피터황제의 방>을 지나 <예카테리나 2세여왕의 방>이 있고 다음은 그녀의 손자 <알렉산드르 1세의 방>인데 로마노프왕가는 이때부터 유럽의 변방에서 탈출했고 나폴레옹군의 침략을 받았으나 승리했다. 파리 센 강에 많은 다리 중에서 가장아름다운 알렉산더 다리는 그가 프랑스와 불가침조약으로 선물한 다리다. 내가 파리에 유학하면서 다니던 샹젤리제 한국교회가 그 다리 근처에 있어서 즐겨 걸었는데 그가 살았던 궁전과 방을 구경하면서 당시의 화려한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다음은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하얀 식탁 방>인데 그곳에는 그가 혁명군에 의해 체포 되었던 새벽 2시 10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옛 모습 대로 있어 로마노프왕조의 몰락의 현장을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았다. 다음에 <공작내외의 방>은 네바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위치에 준보석인 녹색 공작석으로 만든 녹색 기둥이 그 어느 방보다 화려하다. 그 옆에 아기자기한 장식의 <로코코 방> 다음에 카펫의 일종인 벽걸이 장식의 <타피스리 방>은 무려 천년을 보존한 귀한 작품이 있다. 변색이 안 된 것은 색깔을 입힌 유리가루로 제작했고 빛을 반 간접적으로 받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계방>은 100-150년 된 다양한 시계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예카테리나 2세여왕의 쉬는 방>은 비밀의 방으로 남성편력에 이용하던 방이라고 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황금의 방>은 조개껍질위에 상아를 입혀 만든 다양한 카메오와 벽난로위에 변질하기 쉬운 유화대신 유화를 방불케 하는 돌 모자이크화가 인상적이다. 끝으로 <유아놀이방>에 있는 비밀의 책상은 열쇄 대신 순서대로 열도록 설계 되어 황실에서 감춰둔 보물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방들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복도에 우리나라 김흥수 화백의 <춤추는 여인> 그림이 벽에 걸려있었다. 마침 러시아 여행가기 직전에 서울에서 작품전이 있어 보고 갔는데 똑같은 그림이 그곳에도 있었다. 화가자신은 진품이 아니라고 한다는데 일단 세계적인 미술관에 비록 복도지만 걸려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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