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 호수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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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란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작성일2003-07-11 13:51 조회1,280회 댓글91건본문
'집'을 잃고 사는 시대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 통 하나
벌들이 윙윙대는 숲속에 혼자 살으리
시인 W.B. Yeats 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의 일부이다. 세상 사 번뇌를 그야말로 무욕의 일락 속에 침잠해 살고 싶은 생각이 담겨있는 시이다.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이나 '아홉 이랑 콩밭', '꿀벌 통 하나'-예이츠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들고 있는 것들은 하나 같이 소박하고 수수하면서 순수한 것들이다.
집은 사람이 일상에서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정처이고, 혈육들이 따스한 유대로 등을 붙이고 살면서 이상을 키워가는 삶의 근거지이다. 그러니까, 현실의 곤곤한 현장에 나가 각자의 힘든 일상 속에서 맡은 일을 하다가도 날 저물면 어김없이 집을 향해 발길을 옮기게 마련이다. 집이 사람들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되게 되는 것도 그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정처’이며 혈육의 정이 확인되는 ‘안온함’의 장소이기 때문 일 것 이다.
최근에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의 어느 대목엔가 6. 25 사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사람마저 집을 버리고 떠나게 되었는데, 대를 이어 뒤뜰에 가지를 펴고 먹음직스런 감을 수확할 수 있던 감나무가 시름시름 죽어버렸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이 그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 죽은 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며 소리 내어 울던 대목을 읽으며, 나 역시 목이 메이던 기억이 새롭다. ‘집’이 그냥 상품이 아니라 어떤 영감 같은 운명으로 사람과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에는 명문 집안일수록 대를 이어 한 집에 살았다. 우뚝 솟은 솟을대문이며 조상들이 남긴 흔적까지 검게 절어 반들거리는 대청마루며, 울안의 커다란 나무들까지, 무엇하나 집안의 내력과 무관한 것이 없고 애정이 깃 들지 안은 곳이 없는 집 – 그래서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는 그런 ‘집’들을 상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수밖에 없게 되었나 보다. 이제 ‘집’이라는 상품만 있고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진정한 ‘집’은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삶의 역정이 아로새겨진 집, 아름다운 추억들이 고스란히 쌓인 집, 집안의 법도와 가풍까지가 살아 움직이면서 사람을 편히 쉬게 해주는 그런 ‘집’이 그립다.
시인 예이츠가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 안식하고 싶어 했던 그의 집은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이었다. 휘황하게 치장되거나 가공된 건축 자재들로 으리으리하게 시공된 저택이 아니라 자연에서 그대로 옮겨온 나뭇가지와 진흙을 재질로 하여 지어진 작은 오두막이었다. ‘아홉 이랑 콩밭’과 ‘꿀 벌통 하나’쯤으로 노래 되는 무욕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지나친 물질적 욕망의 노예로 전락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꿈꾸고, 혈육끼리의 안온한 휴식을 누려야 할 ‘집’마저도 투기의 대상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상품화된 ‘집’만 있고 영혼이 안식할 ‘집’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인가. 가난한 청빈의 안락함을 노래한 시인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의 끝 부분은 이렇다. 소음과 매연에 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속삭여주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절실함이 되어 울린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 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장도로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나니.”
여러 친구들 안녕하셨어요? 반갑습니다. 이런 좋은 사랑방이 생겼으니 가끔 만나 소회를 풀읍시다. 위의 글은 이건청(시인, 한양대 사범대 학장) 님께서 어느 잡지에 쓰신것입니다. 제가 speech 시간에 외운것중 가장 기억에 남고 좋아하는 시를 인용 하셨기에 반가워서 또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서 감히 올렸습니다. 원문은 친구 김혜경이 잽싸게 올린 것이 있어 저의 수고가 덜어졌군요. 박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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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덕님님의 댓글
손덕님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박란수!! 반가워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좋은 글 올린 네 순발력과 재치를 치하한다. 시보다도 더 편안하고 소박한 글이네. 자주자주 이같이 마음에 와 닿는 글 실어주시게. 고마워.